어느 친애하는 술꾼의 추천으로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보았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4명의 중년 남자 교사들이 술자리에서, 인간이 적절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면 더욱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에 대해 논의하다가, 당장 실행에 옮기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감상하는 동안 내내 화면에선 술 냄새가 진동하고 극 중 인물들과 함께 만취해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대체로 우발적이고 황당한 계획일수록 한마음으로 단결해 망설임 없이 진행시켜 버리곤 하는 남자들 모습이 몹시 설득력 있었다.

또 다른 가설에 따르면,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유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술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확인하긴 어렵지만 그만큼 술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해왔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만큼 술은 그 종류도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값싼 희석주나 30년 넘게 숙성된 값비싼 증류주나 결국 탕수육만큼 맛있지는 않더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박 시, 참고하겠다.)

굳이 인류 역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각자 인생의 중대한 결정이나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는 결정적 순간, 성공과 실패의 순간, 사랑이 시작되고 떠나는 순간, 깊은 밤 이불을 차게 만드는 다채로운 실수의 순간, 술이 함께했던 뚜렷한 기억은 누구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관찰하고 연구해 본 결과, 술은 자유 의지가 없으니, 어떤 실수나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다. 모든 실수나 잘못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만취한 이들의 실수에 유독 관대한 편이다. 심지어 사법부에서도 만취로 인한 심신미약을 감형의 이유로 인정하기도 한다. 말 못하는 술은 그저 억울할 뿐이다.

왜 인간들의 잘못을 죄 없는 술이 뒤집어써야 하는가? 아무래도 그건 기쁘고 슬프고 무료한 시간을 오랫동안 함께 해온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 우리의 모든 잘못과 실수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 못하는 이들은 음주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