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영어에 감탄했다. 지난 몇 달간 윤여정은 드라마 ‘파친코’ 홍보를 위해 미국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그랬지만 윤여정은 정말 영어를 재치 있게 할 줄 안다. 특히 나는 그가 ‘켈리 클락슨 쇼’에 출연해 영어로 농담을 따 먹는 영상을 유튜브로 보며 박수를 쳤다.

진행자가 물었다. “점쟁이가 96살에 짝을 만날 거라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윤여정은 답했다. “96살에 짝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치매에 걸리거나 노망이 날 수도 있는데.” 진행자는 뒤로 넘어갔다. 관객들도 넘어갔다. 진행자는 또 물었다. “도박을 해보신 적 있나요?” 윤여정은 답했다. “라스베이거스에 갔는데 친구가 슬롯머신을 당겨보라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수많은 사람이 당겼을 텐데 이건 너무 비위생적이야” 진행자는 빵 터졌다. 관객도 터졌다. 나도 터졌다.

동영상 아래 댓글을 보다 기분이 좀 상했다. 몇몇 한국인이 윤여정의 완벽하지 않은 문법과 발음을 지적질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꼬장이다. 한국인은 문법과 발음에 과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콘텐츠다. 당신에게 콘텐츠가 있다면 도구의 품질은 크게 상관없다. 내 경험상으로 보자면 영어 발음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점은 발음이 좋은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문법과 발음의 노예였다. 그걸 벗게 된 건 영국서 잠시 살던 시절이다. “아륀지 좀 살까?”라고 했더니 영국인 친구는 “그래. 오렌지 좀 사자”고 말했다. “머대너 좋아해?”라고 물었더니 “마돈나 좋아해”라고 답했다. 오렌지는 오렌지고 마돈나는 마돈나다. 혀에 캘리포니아산 버터를 바른 척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미국 도시 산호세의 외래어 표기법은 여전히 ‘새너제이’다. 그게 딱히 원 발음에 가까운 것도 아니라는 오랜 지적에도 국립국어원은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머대너의 나라 미국 새너제이에 가서 아륀지를 사먹는 것이다. 그렇게 발음해야 지나가던 백인 미국인에게 칭찬이라도 들을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면서.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