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살던 동네에 작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다. 오래된 가게였는데, 주인 아저씨가 항상 자리를 지켰다. 그는 업무상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별 말을 않는 과묵한 성품이었다. 살갑지 않은 아저씨의 태도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카페가 조용하고 커피가 맛있어서 좋았다. 커피 만들기 귀찮은 날이나 남이 타준 커피가 그리운 날엔 반드시 이 가게를 찾았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임신을 하면서 한동안 커피를 멀리하게 되어 카페에도 뜸했다가, 수유를 마치고 아가들이 이백 일이 지났을 때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다시 그 카페에 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세요. 얼음 한 개 넣어주시고요.”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와서 유모차에 앉은 아가들 손에 쌀과자를 쥐여주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커피 나왔습니다.” 아저씨가 직접 커피를 가져다주셨다. 셀프 서비스가 기본인 그 가게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뚝뚝한 분이 베푸는 작은 배려가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살짝 건드렸다.

겨울이 되어 아가들 바깥 출입이 힘들어지면서 카페에 통 가지 못했다. 날이 조금 풀린 어느 날 오랜만에 그곳에 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돌아왔는데 아차, 얼음을 넣어달란 말을 못 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 한두 개를 넣어 온도를 살짝 낮춰 마시는 건 나의 오랜 커피 취향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던 때였다. “커피 나왔습니다. 얼음 한 개 넣었습니다.” 세상에나, 아저씨는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저씨는 상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쌀쌀한 것도 아니었다. 인사도 빠짐없이 하셨고, 아이에게도 그런 대로 친절했다. 무엇보다 그 카페엔 ‘익명의 자유’가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단골일 수도, 단골이 아닐 수도 있는 내게 아저씨는 굳이 이런저런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은 날도, 좋지 않은 날도 그 자연스러움에 기대어 부담 없이 카페에서 쉬다 나올 수 있었다.

새 동네로 이사 와서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다. 얼음을 한 개 넣어 먹었는데도 그곳 커피와는 맛이 미묘하게 달랐다. 예전 그 카페에서, 나는 아저씨의 무심한 듯 따뜻한 기운을 함께 마시고 있었나 보다.

김민희, 요리 강사·‘푸른 바당과 초록의 우영팟’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