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수많은 외국 공관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 대사관이나 문화원처럼 깊은 영향을 준 공관은 흔치 않을 것이다. 지금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에 가려 버렸지만 신촌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면, 그 파격적이고 미래적인 자태를 슬쩍 드러내 보이던 프랑스 대사관. 바로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김중업의 대표적 작업물이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예술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김중업은 당시 세계 최고 건축가였던 르코르뷔지에를 만난다. 김중업은 그길로 프랑스에 유학, 각고의 노력으로 르코르뷔지에의 수제자가 된다. 이후 귀국한 그가 프랑스 대사관 설계 공모에 당당히 선정됐다. 내로라하는 프랑스 건축가들을 제치고 뽑힌 것이다.

1960년대에 지은 대사관 건물은 그 예술적 완성도로 국내외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백미는 단연코 하늘을 향해 치솟는, 한국의 처마를 연상시키는 지붕을 가진 대사 관저일 것이다. 이곳에 대사관의 주요 공식 행사가 이뤄지는 살롱이 있다. 국내 정·재계, 예술계를 대표하는 이들이 초청됐고, 그들의 이름이 적힌 방명록이 바로 한불 우호의 상징인 셈이다. 마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19세기 말~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까지 프랑스가 번성했던 시대)에 살롱을 통해, 세상에 프랑스 문화를 알린 것이 연상된다. 모두가 먹고사는 일 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때에도, 문화라는 다른 관점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던 대사관이 드디어 대대적 재건축 작업에 들어간다. 문화원과 상무관, 영사관 같은 모든 부속 기관을 한곳에 모아 효율적 업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양국 모두에 중요한 김중업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주변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린, 프랑스 타워(La Tour de France)의 탄생이다. 각 기관을 통합하는 이 건물은 2023년 봄에 선보일 예정이다.

물론 대사관이 더 편리해지고 최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경복궁 옆 프랑스 문화원에서 쓰디쓴 프랑스식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셔 보고, 르누아르관(Salle Renoir)에서 검열을 피해 간 클루조나 트뤼포의 영화 때문에 가슴 뛰는 경험이 있는 세대에게는 이 또한 한 시대가 저무는 아쉬운 작별이 아닐까.

/심우찬 패션 칼럼니스트·'벨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