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직장에 다닐 때 이렇게 시작하는 투고 메일을 꽤 받았다. “믿음사 담당자님께.” 기독교 세계와 친숙한 단어인 ‘믿음’과 불교적 공간을 떠오르게 하는 ‘사’가 절묘하게 결합해 사회 통합적인 메시지가 돋보이는 이 이름의 출판사…는 내가 알기로 아직 없다. 다니던 출판사의 이름은 ‘민음사’였다. 첫인사가 남긴 상흔 때문이었을까. 믿음사 앞으로 보내온 원고 중에 실제 책이 된 경우는 없었다.

'일사일언' 삽입

위대한 작품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전할 때, 다수의 편집자는 비중이 작은 악역이 되고는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인 ‘해리 포터’ 시리즈는 12개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했다. 거기에는 형편없는 안목을 지닌 12명의 편집자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작품은 ‘블룸즈버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다행히 그 회사에는 안목과 믿음이라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편집자가 있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편집자는 앞선 12명의 범인(凡人)이기 쉽다. 편집자의 메일함에는 보낸 이들 각자에게 소중했을 창작물들이 ‘투고’라는 이름으로 쌓여 있다. 혹시 여기에 제2의 조앤 롤링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갖고 자세를 고쳐 앉아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원고는 책이 될 수 없다. 세상에는 대작을 알아보지 못한 12명의 편집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작을 쓰지 못한 1200명의 작가가 있으니까. 그리하여 답장을 보내는 것이다. 귀하의 원고는 안타깝게도….

반려된 원고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본인이 쓰고자 하는 장르의 최근작에 대한 업데이트가 없다, 본인의 원고가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시도라 여긴다, 본인의 인생사 기구함을 과대평가한다, 본인이 원고를 보낸 출판사의 지향이나 성격에 관심이 없다, 등등. 결국 너무나 본인 위주라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본인 중에 미래 대작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 오늘도 편집자는 잎새에 이는 바람처럼 12명 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1200명을 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