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얀 종이가 놓인 화판 눈치만 살피고 있다, 연필 한번 잡아 보지 못한 채…. 몇 년 전 그림책 여러 권을 연달아 출간하고 그로기 상태가 된 적이 있다. 잠까지 줄여가며 작업에만 매달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해 버렸다. 그래도 원하던 일을 마음껏 하면서 그 글과 그림에서 밥까지 나오니 더없이 감사했다. 그러나 신생 출판사에, 전집 꼬리표가 붙어 세상에 나온 그림책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전집이라고 대충 작업한 적은 없다. 다만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아쉬움은 남아있다. 세상의 홀대 속에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동화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책상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지역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몇 권의 가제본도 만들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수많은 출판사에 투고했다. ‘죄송하게도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런 답장이라도 보내온 출판사는 몇 안 됐다.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이 대부분이었다. 수도 없이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했다. 작품을 거절당한 것뿐인데, 내 존재가 거절당한 기분이었다. 그 뼈아픈 감정, 자신감을 잃게 하고 사방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불쾌한 감정, 그게 바로 거절감이다. 나의 재능 없음을 탓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지 못해 괴로웠다.

그런 어느 날,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 들려왔다. 조금만 더 해보라는 말인 걸까? 다시 힘을 내어 내 자리로 또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하얀 종이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복잡했다. 이러다 또 거절당하면 어쩌지. 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거절감이여. 그래도 엉덩이로 버티며 오늘도 나는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것만이 유일한 나의 무기다.

조숙경 작가·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