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엔 설탕이 참으로 귀했다. 할머니는 병치레가 잦은 내가 열이 날 때면 설탕물을 한잔 타 주시곤 했다. 그 달콤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 명절이면 설탕을 선물하기도 했다. 내 기억 속의 설탕은 꽤 유익하고 좋은 것이었다. 그땐 그랬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멸치육수 국수를 처음 먹어 보았다. 밥도 잘 먹지 않던 내가 처음 마주한 국수였다. 친구가 먹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고 이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국수 가락이 호로록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살랑거리는 느낌이라니! 입안을 간질이다가 넘어가는 그 부드러운 목 넘김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 매끈한 국수 가락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입맛 어딘가에 어린 시절 설탕의 기억이 남아서인지, 탱글한 국수가 입안에서 춤추던 여운이 남아서인지 탄수화물을 끊을 수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알을 보면 숟가락을 멈추지 못했다. 잘 씹다보면 당류로 분해되어 나는 달콤한 뒷맛이 계속 나에게 손짓했다. 밥이든 국수든 잘 호화(糊化·곡물 성분이 먹기 좋게 잘 풀어진 것)된 탄수화물을 끊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피로감이 점점 오래가는 것을 느꼈다.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얼굴은 푸석하고 몸이 무거웠다. 건강검진을 받았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좋은 식재료를 연구하고 약이 되는 음식을 연구했던 나에겐 더욱 충격적인 결과였다. 식단 조절이 필요했다. 3개월간 탄수화물을 줄였더니 체중이 5.5kg 줄었다. 다시 건강검진을 받으니 문제 있던 항목의 결과가 모두 정상 범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먹을거리가 산재한 요즘 설탕을 포함한 정제된 탄수화물은 캔커피, 청량음료, 과일주스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정제된 탄수화물로 만드는 케이크와 과자, 빵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설탕이 뒤범벅돼 있다.

정제된 탄수화물과 설탕이 우리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설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이 시리다. 가끔씩 몸이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날 때면 할머니 특효의 비방(祕方), 달콤한 설탕물이 생각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