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후배 한 명이 교사를 그만두고 수능을 다시 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한 인간이 성장해 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싶어 교사를 했다던 친구였다.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라 했다. 다만 사회적 존중이 없고 대우는 부족한 지금의 생활을 사명감만으로 버텨내서는 좋은 교사로 평생 살 자신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쳐온 지식이 있으니 그 지식을 기반으로 수능을 다시 치고 의대 또는 한의대에 가보겠다는 게 대안이었다. ‘의사도 사명감 없이는 못 하는 직업 아니냐’ 말했더니 ‘적성이나 사명감으로 직업을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꽤나 공감이 되어, 나는 그저 잘해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꿈꿔 이룬 경찰을 그만뒀다는 지인의 소식이나, 수년간 준비해 합격했을 공무원이 너무 많이 그만두어 업무 공백이 날 지경이라는 이야기 등이 도처에서 들린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사명감’으로 일을 선택했다던 기자 한 명도 그만뒀다고 했다. ‘사명감’만으로 버티지는 못하겠다면서 말이다.

못내 씁쓸했다. ‘소명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등의 사회적 인식을 공유했던 세대라서 그럴까.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수입’이 확고부동해진 것이 낯설다. 물론, 소득이 직업 선택의 고려 요소가 아니었던 적은 과거 어느 때에도 없었다. 그러나 각 직업들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가치’가 이렇게 존중받지 못했던 시기도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대학 입학만 해도 그러하다. 더 이상 우수 대학 진학의 상징은 ‘SKY’나 ‘카이스트’가 아니다. ‘의치한약수.’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가 좋은 대학 진학을 상징하는 단어를 대체했다. 이들이 좋은 직업이 아니었던 적이 물론 없다. 허나 다른 직업들이 가지는 가치를 소용돌이처럼 모두 빨아들인 후 지금과 같이 확고한 위상으로 자리매김한 적은 없어 보인다.

혹자는 시대적 가치가 달라진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금의 풍조는 상당 부분 사회 제도 설계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유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 정책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인 것이다. 요즘 문제되는 초급장교 충원 문제를 보자. 최저 임금은 지난 10년간 급격하게 올랐다. 병장 월급도 곧 200만원에 이를 거라 한다. 그러나 부사관 및 초급 장교의 보수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명예와 애국심으로 수행하는 직업이 군인이라 하지만,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것 정도의 낮은 보수로는 직업군인을 택할 사람은 많지 않다.

안정적이고 높은 보수를 받는다고 하는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의 지위 역시 사회적 제도 설계의 결과물임을 인식해야 한다. 왜 의사의 지위가 과거보다 더 공고화되었을까? 고령화로 의사 수요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의대 정원은 고정되었던 까닭이다. 그 결과 3억원이 넘는 연봉을 약속해도 공공 부문에서 의사 채용이 어려워졌다. 회계사는 어떠한가. 10년 전 기피하는 전문직으로 여겨지던 회계사가 다시 각광받게 된 것은 지정감사제 도입 영향이 크다.

이제라도 사회적 유인 설계 구조를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독점 이익이 과도한 직업은 이를 낮추도록 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은 마땅한 보수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와 공정이라는 이념에 걸맞은 사회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