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인 조치원에 잠시 내려가 있을 때 일이다. 밤이 되니 후덥지근한 공기가 조금이나마 시원해졌고, 나는 한적한 공원에서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러 나왔다. 그런데 산책로 근처에서 낯선 음악 소리가 들렸다. 주차장에서 남성 한 명이 음악에 맞춰 차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이 풍경을 이질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그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가 한국어나 영어가 아니라 러시아어였다는 것이다. 러시아어를 배웠고 그 지역으로 여행도 다녀와 보았던 나로서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심하게나마 ‘Dobryi vecher(Good evening)’라고 말을 건네니 그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상대방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으로 이곳에서 7~8년을 살았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강아지 때문에 더 길게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내 고향의 변화한 풍경을 실감했다.

/일러스트=양진경

며칠 뒤, 역전에 있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갈비탕을 열심히 먹고 있는 손님 두 명은 아무리 보아도 구소비에트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온 것처럼 보였다. 그들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으나, 밥 먹으러 왔는데 옆 테이블에서 갑자기 알은척을 하며 말을 걸어보는 것이 괜찮은지에 대해서 소심한 고민도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지역의 외국인과 소통을 시도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주저함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을 여행할 때 수많은 사람이 나에게 불쑥 다가와 말을 걸었던 기억을 상기하며 용기를 내서 이렇게 물었다. ‘Mozhno govarit’ po ruski(혹시 러시아어 할 줄 아세요)?’ 그들은 깜짝 놀라더니 이곳에서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을 만날 줄은 몰랐다고 얘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 또한 조치원 인근 전동면에서 일을 해왔고, 조치원에서 산 지 7년째라고 하였다.

사실 조치원에서 구소련계 외국인들과 만나는 것은 이제 신기한 일도 아니다. 시야를 더 넓히면 외국인들이 형성하는 새로운 경관은 더욱 자주 들어온다. 세종시에 우즈베키스탄 출신은 약 250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베트남인과 태국인은 각각 1000명이 넘는다. 지역 주민이 의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이미 고용과 지역 상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얼마 전 외국인 인구 비율이 10%를 넘은 음성군에 다녀왔을 때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 나는 어렸을 때 음성에서 살다가 2004년에 그곳을 떠났는데, 2021년의 음성 풍경은 내가 떠나던 2004년의 모습을 일정 부분 간직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곳곳에 ‘아시아 마트’라는 외국 식품점이 있었고, 다문화 가정 지원 센터가 신식 건물에 들어와 있었으며, 러시아 음식을 파는 상점이 읍내 중심가에 있었다. 어느 곳에는 읽기 어려운 태국 문자로 된 광고판이 있었는데, 농촌 일꾼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이주민 수용을 두고 다시 한번 이주민 문제가 부상했다. 식자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일삼는 가운데, 실제 현장에서 이주민 수용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지방은 이미 이주민의 대규모 유입에 따른 통합과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실험장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나와 러시아어로 활발하게 얘기를 나누었던 그들은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모님 여기 계산요!” 우리가 이주민 문제의 지혜를 구할 곳은 대륙 반대편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