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줬다. 가슴이 아프다. 부동산 정책은 정권의 위기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데 부동산만 못한 게 아니라는 점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문화 정책에서 보수는 블랙 리스트 사건으로 그들이 얼마나 문화를 천박하게 보는지 여실히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그 뒤에 들어온 진보 정권은? 현장에서 보면 “그놈이 그놈이다.” 관련 단체 기관장을 비롯해 정부가 지원하는 많은 문화 지원 프로그램에는 ‘완장질’만 가득하고, 공공 기관들의 전형적인 ‘갑질' 횡포가 너무 심하다. 정부 실패에 관한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이 말했던 ‘지대 추구(rent-seeking·기득권 울타리 안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벌이는 비생산적 활동)’라는 용어가 딱 들어맞는다.

/일러스트=이철원

비유를 들어보자. 한국의 농업은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서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협을 비롯해서 농업과 관련된 지원 기구들의 직원은 농민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연봉을 받는다. 같은 나이의 농협중앙회 간부와 농민의 삶은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물론 ‘마침 그때’ 가격이 폭등한 농산물을 대규모로 재배한 농민 중에는 건물도 사고 꽤 성공한 사람도 있다. 문화가 딱 그렇다. 문화와 관련된 공기업 직원들은 나도 만나기 두려울 정도다. 콘텐츠진흥원 같은 데 동료들이 무슨 지원 서류를 내자고 하면, 가슴이 먼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정부 실무자를 만나는 것이 두렵고, 직원들의 완장질이 너무 무섭다. 블랙 리스트가 사라진 자리에 흔히 ‘화이트 리스트’라고 부르는 ‘자기 친한 사람들 도와주기'가 만연한데, 좀 너무하다. 문화에 대한 정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농업과 문화가 뭐가 다를까? 시장 실패와 제도 실패가 난무하는 상황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농업이나 문화는 전형적으로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분야다. 그냥 시장에서 생존하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논밭을 전부 팔고 아파트 짓자고 할 거고, 뮤지컬 정도를 뺀 대부분의 공연 예술도 사라질 것이다. 코로나가 한참인 작년의 공연예술 분야 매출액이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1718억원 정도 된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도 2375억원이었다. 이 작은 시장의 절반이 뮤지컬이다. 1000억원도 안 되는 범위 안에 연극을 비롯해 클래식, 무용, 국악 등이 벼랑 끝에 서 있다. 정부 기구로 보면 영화만 영화진흥위원회로 따로 독립되어 있을 뿐 다른 장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다 몰아넣었다. 이 위원회에 해당 분야가 위원으로 들어갔느냐, 누가 들어갔느냐 같은 요인이 정부 정책의 향방을 가른다. 1000억원짜리 시장에 딱 맞는 위원회인가? 어지간한 복지 정책도 예산이 조 단위를 넘긴 지 오래인데, 문화 분야는 영화 빼고 나면 다른 정책들의 ‘끝전’ 규모도 안 된다. 전형적으로 시장 실패와 제도 실패가 동시에 작동하는 모습이다. 작은 시장이라 그런지 대선 후보급 인사들은 거들떠도 안 본다.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단어가 ‘천박’ 아닌가?

대선 후보님들에게 묻고 싶다. ‘최근에 연극 보신 게 언제인가요?’ ‘자기 돈 내고 공연장 가신 게 언제인가요?’ 좀 억지지만, 대선 후보들이 지지자들과 국악 공연도 같이 좀 보고, 소극장에서 연극도 보고 연출가·배우와 차라도 한잔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코로나 문화 대책보다 그게 더 파급력 큰 문화 시책일 것이다. 지방 극장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나 이재명 지사가 연극 본다고 하면 사람들 좀 몰릴 것이다. 당장 매출 규모가 두 배 이상 늘어날 정도로 열악한 시장이다.

정치인의 문화적 소양이란 그런 것이다. 극장에 가봐야 뭐가 불편하고 누구를 도와야 할지 알 게 될 것 아닌가? 보수 쪽 후보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맨날 문재인 대통령 욕만 하지 말고, 가까운 공연장에 가서 후기라도 좀 남겨 주시길 바란다. 정책 대안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실제로 가보면 당장 알 수 있는 것 또 하나. 주요 공연장과 공연은 서울에만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 청년들도 연극, 국악, 현대무용 보고 싶다. 보기 싫어서 안 가는 게 아니다. 도심 재생하고 균형 발전한다고 쓰는 돈 1%만 문화에 써도 지방 문화 형편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