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투자 발표회./뉴시스

미국 내에 반도체 첨단 공장을 세우는 삼성전자에 미 정부가 64억달러(약 9조원)의 보조금을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인텔(85억달러), TSMC(66억달러)에 이어 셋째로 많다. 삼성전자가 당초의 ‘170억달러 투자’ 계획보다 규모를 2배 이상 늘려 ‘10년간 400억달러(약 55조원) 이상 투자’를 결정한 데 대한 보상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인 2나노급도 미국 공장에서 생산키로 했다.

우리로선 K반도체의 주력 생산기지가 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자립주의’를 선언한 지 3년 만에 미국은 설계부터 생산, 첨단 패키징까지 모든 공정을 미국 내에서 완결하는 반도체 생태계 조성의 큰 그림을 마무리 지었다. 2022년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고 보조금 73조원(527억달러)을 유인책으로 제시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총 487조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2030년까지 첨단 반도체의 20%를 미국 안에서 생산하겠다던 공언이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미국만 뛰는 게 아니다. 지난 3년간 미·중은 ‘1000일 전쟁’으로 불릴 만큼 치열한 반도체 주도권 경쟁을 펼쳤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규제에 맞서 중국은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범용 반도체로 눈 돌려 시장 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2년 이후 올해 말까지 미국에서 착공하는 반도체 공장이 25곳인데, 같은 기간 중국이 자국에 짓는 반도체 공장이 20곳에 달한다.

일본도 반도체 산업을 회생시키려 대만 TSMC와 손잡고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 정부·지자체·의회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TSMC의 구마모토 1공장은 당초 계획보다 2년이나 앞당겨 불과 2년 만에 완공됐다. 일본 정부는 TSMC 구마모토 1공장 건설에 4760억엔(약 4조2400억원)을 지원했고, 2공장 건설에도 최대 7320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반도체 지각 변동의 중대한 시기에 주요국이 세금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산업 유치에 총력전이지만 한국은 ‘대기업 특혜’라는 반(反)기업 정서에 묶여 보조금 지급은 엄두도 못 낸다. 우리도 2043년까지 총 622조원이 투자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정부의 현금성 지원은 기업 투자액의 15%를 세액 공제해주는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 올 연말로 시효가 끝난다. 지자체들 훼방으로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착공에만 3년이 걸릴 지경이다. 이런 나라에서 반도체 산업이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