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반도체 산업의 약진덕에 18년만에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파운드리 분야의 대만 점유율은 70%가 넘고, 후공정과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도 40%, 20%대 세계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사지은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TSMC 공장./조선일보 DB

지난해 대만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2811달러로, 한국의 3만2237달러를 18년 만에 넘어섰다고 대만 통계처가 발표했다. 7년 전인 2015년만 해도 한국(2만8740달러)이 대만(2만2750달러)보다 20%나 많았지만 대만이 빠른 속도로 추격하면서 짧은 기간 안에 역전당했다.

희비를 가른 것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격차였다. 인공지능·빅데이터·자율차 등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이 메모리에서 파운드리(위탁생산)로 재편됐는데,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이 흐름에 잘 올라탔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이 56%까지 올라가며 시가 총액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여기엔 반도체를 국가 안보 문제로 접근한 대만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한몫을 했다. 정부가 나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용수·전력 공급망을 구축했으며, 매년 550명의 석·박사급을 배출하는 인재 양성 시스템을 만들었다. 대만 정치권도 반도체 지원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없다. 작년 11월엔 반도체 신규 투자의 25%를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반면 한국에선 지원은커녕 반도체 기업을 번번이 발목 잡는 일이 벌어져 왔다. 삼성전자가 평택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지어 놓고도 송전선 연결이 5년이나 지체되고,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는 토지 수용 지연 등으로 착공이 3년 늦어졌다. 반도체 세액 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법안도 국회에서 오랫동안 발목 잡혀 있다가 최근에야 통과됐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대만은 3년, 한국에선 8년이 걸린다고 한다. 어떻게 경쟁에서 이기겠는가.

대만의 해외 진출 기업은 연 평균 70여 개꼴로 대만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반기업 규제와 강성 노조에 시달리는 한국 기업들은 국내 U턴은 커녕 해외투자를 더 늘리고 있다. 최근 10년간 제조업 연평균 성장률은 대만(5.5%)이 한국(2.8%)의 2배 수준이다. 한국 경제는 대만에 비해 성장률(1.6%대 2.1%), 경상수지 흑자 비율(2.6% 대 11.8%), 소비자 물가(4.2% 대 2.4%) 등 대부분 지표에서 뒤처졌다. 정부와 정치권, 산업계 모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