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의 노골적 개입 탓에 KT 대표 인사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연임이 결정됐던 구현모 KT 대표(왼쪽)가 연임을 포기한데 이어, 새로 뽑힌 윤경림 후보마저 사퇴의사를 밝혔다.

국민연금과 여당에서 퇴진 압박을 받아온 KT의 CEO 후보자가 주주총회를 일주일여 앞두고 또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 달 전 이사회에서 연임이 결정된 구현모 현 KT 대표가 사퇴한 데 이어 다시 파행이 빚어진 것이다. 어제 사퇴한 후보자는 “내가 더 버티면 KT가 망가질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KT의 인사에 정부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 KT는 이번 CEO 인선을 공모 형태로 진행하고, 4배수 후보자를 선정하는 등 절차적 하자도 없었다. 국제 의결권 자문기구들도 모두 이 후보자에게 찬성 입장을 밝혔다. 주주총회를 했으면 그대로 통과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이 사퇴한 것은 검찰 수사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이란 추측이 많다. 한 시민단체가 이 후보자에 대해 사외이사 향응 제공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하자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의혹이 맞는지는 앞으로 밝혀질 일이나 사실 여부를 떠나 후보자 본인에겐 큰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KT 같은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금융 지주회사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CEO가 ‘셀프 연임’을 하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KT 사례처럼 정부가 검찰을 내세워 압박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또 하나 남기는 것이다. 검찰 수사권은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수사권이 남용되면 검찰이 해야 할 진짜 불법 수사의 정당성까지 퇴색될 수 있다. 위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