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첫 방문지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을 정도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쟁국들은 이런 흐름에 올라타려 앞다퉈 반도체 지원법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에선 야당이 '재벌 특혜' 프레임을 걸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다. /뉴시스

내년 예산안을 볼모로 잡은 민주당의 반대로 법인세 인하, 반도체특별법 등 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누더기가 될 상황이 됐다. 법인세법은 국회 통과가 불발되거나 통과되더라도 1%포인트 내외의 형식적 인하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고, 반도체법에선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증원 등의 핵심 조항이 빠진 채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기업 활력을 높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에는 크게 미흡하다.

전 정권이 떠넘긴 국가 부채 1000조원의 부담, 미국발 금리 인상 때문에 지금 정부가 돈을 풀거나 금융을 완화하는 재정·통화 정책을 쓸 수가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카드는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것인데, 정부는 법인세를 낮춰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을 늘리는 정책을 채택했다. 정부안대로 법인세 최고 세율을 3%포인트 내리면 경제 성장을 3.4%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KDI는 분석했다. OECD 평균보다 높은 법인세율의 족쇄를 풀어줘야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벌 특혜’ ‘초부자 감세’라면서 법인세 인하를 거부해왔다. 민주당의 반대가 계속되자 국회의장은 최고세율 인하 폭을 정부안의 3%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낮춘 중재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중재안을 받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중재안 수용을 보류한 상황이다. 법인세 인하 1%포인트 인하 정도로는 기업 투자를 확대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특별법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핵심 내용은 빠진 채 여야가 타협하는 어정쩡한 모양이 돼버렸다. 반도체 산업단지 지정 인허가 요건 완화만 합의됐을 뿐 반도체 업계가 강하게 원했던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의 정원 확대 조항은 삭제된 채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역 균형 발전에 반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반도체 세제 관련 법안의 핵심 사항인 ‘투자액 20% 세액공제’(대기업 기준)도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은 세액 공제를 10% 이상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예산안 통과를 위해 이 정도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경쟁국 대만은 반도체 투자의 세액공제 비율을 25%로 높였는데, 한국 야당은 10% 이상은 못 해준다며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은 “재벌 특혜”라고 주장하나 틀린 말이다. 반도체 지원 관련법은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행정·세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경쟁국 수준으로 맞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경제 위기 돌파에 꼭 필요한 정책을 정치적 흥정물로 삼아 좌초시켜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