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이 압사 사고 사망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번 사고로 현재까지 120명이 숨지고 10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뉴스1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앞두고 최소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0여 명이 깔려 숨지고 130여 명이 다치는 대형 압사 참사가 일어났다. 이태원동 중심의 해밀톤호텔 옆에 있는 폭 3.2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벌어졌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이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대거 이태원으로 몰린 탓이 컸다. 사망자 상당수도 20대였다. 부상자 중에 상태가 위중한 사람도 있어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사고 경위를 떠나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했다. 이번 사고는 단일 사고 인명 피해로는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참사다. 1960년 서울역에서 설 귀성객들이 계단에서 밀려 30여 명이 사망한 사고와 1965년 광주 전국체전 개막식 때 입장객들이 좁은 문으로 한꺼번에 몰려 12명이 사망했던 일보다 훨씬 끔찍한 압사 사고다.

사고 발생 장소는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뒤편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이다. 번화가와 대로변을 잇는 경사진 골목이다 보니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이태원역에서 나와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누군가 넘어지면서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깔렸다는 것이다. 골목길 한쪽은 호텔 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고, 다른 한쪽은 영업을 하지 않거나 문이 닫혀 있는 가게들이어서 사람들이 피할 틈이 없었던 것도 화를 키웠다.

사고 직후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인파에 사람들이 겹겹이 깔려 움직이지도 못했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맨 아래에 깔린 피해자를 빼내려 했으나 위에 뒤엉킨 사람들의 무게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심정지 상태의 환자를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은 4분가량이라고 말한다. 인근 소방서와 사고 현장은 100m 거리로 멀지 않았지만 워낙 인파와 차량이 몰려 있어 구급대원들이 도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제대로 구조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심정지와 호흡곤란 환자가 300명 가까이 나오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구급대원도 턱없이 부족해 시민들까지 가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고 초반 피해자들이 길가 곳곳에 방치된 채 놓여 있기도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번 사고는 역부족이었던 측면이 있지만 대비가 부족했었던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이태원 일대엔 사고 전날인 28일에도 수만 명이 몰렸다. 토요일이자 사고 당일인 29일엔 인파가 더 몰릴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찰이나 담당 구청은 이런 상황에 대비한 안전 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경찰 137명을 이태원에 배치해 안전·질서 유지를 하겠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절도·마약 범죄 등 강력 사건 예방에 집중돼 있었다. 용산구도 코로나 방역 대비책에만 집중했다. 사람이 갑자기 몰리면 지하철역 무정차도 검토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8일 열린 여의도 불꽃축제 때는 여의나루역 등 승강장에 인파가 몰리자 해당 역을 무정차 통과하도록 했었다. 아예 토요일 저녁부터 왕복 4차로인 이태원로 차량 통행을 막아 사람들이 모일 공간을 확보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압사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후진국에서만 일어나는 사고도 아니다. 2003년 2월 미국 일리노이주 나이트클럽에선 계단 출구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21명이 숨졌고, 독일에선 2010년 한 음악 축제에서 터널을 지나던 관객들이 서로 밀고 밀리다가 19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미리 사고 가능성을 예측해 대비하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재난 대비 시스템에 대규모 인원이 몰릴 때를 상정한 인파 대책이 미흡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고 우려 지역에 CCTV를 설치해 영상 분석 기술로 인구밀도, 통행 방향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안전 관리 인원 투입, 출입 통제 같은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송년 행사 때 경찰 통제선 바깥에 인파가 몰리면 해산시키겠다는 경고를 발표하는 등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한다. 이런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규모 인파를 관리하는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