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올 들어 누적 적자가 247억달러에 달했다. 주 원인은 에너지 수입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1~8월 중 원유·가스·석탄의 3대 에너지 수입액이 작년보다 89%(589억달러)나 늘어났다. 에너지 값이 비싸지면 소비가 줄어야 할 텐데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7월 기준 휘발유 소비량이 1년 전보다 16%나 늘었다. 정부가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유류세를 대폭 낮춘 탓에 에너지 절약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조태형 기자 =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 25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매장이 문을 연 채 영업하고 있다. 2022.7.25/뉴스1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계속 억제해 온 결과 전기 소비량도 줄지 않았다. 작년 기준 국민 1인당 전기 사용량이 캐나다, 미국에 이어 세계 3위(1만330KWh)다. 작년에도 5% 증가했다. 반도체·화학·철강 등 전력 소모가 많은 산업 구조 탓이 크지만, 전기료가 너무 싸 가정과 가게 등에서 전기 절약에 둔감한 탓도 있다. 산업용 전기료는 OECD 평균 전기료의 88% 수준이나 가정용 전기료는 61%에 불과하다. 독일의 3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이다.

한국에서 전기요금은 ‘정치 요금’이다. 원가 반영은커녕 복지와 물가 관리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문재인 정부 땐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전기 값의 정치화가 더 심해졌다. 한전 사장은 “문 정부 5년 동안 전기 요금 인상을 10번 요청했지만 단 한번만 승인받았다”고 했다. 문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면 탈원전 정책에 오점이 된다고 판단해 불허했기 때문이다. 전기료 왜곡의 결과 한전의 적자가 올해 30조원에 달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으로 에너지 위기를 맞은 유럽에선 전기료와 난방비를 대폭 올렸다. 전력 소비 10% 감축, 가스 소비 15% 감축이란 목표를 내걸고 19도 이상 난방 금지, 28도 이하 냉방 금지(독일), 온수 샤워 5분 이내 제한(덴마크), 에펠탑 조기 소등(프랑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기, 고속도로 과속 자제 같은 강도 높은 절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유럽보다 한국이 훨씬 더 높은데 저렴한 전기료 탓에 우리 국민과 기업은 에너지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요금 체계에선 에너지 효율화와 관련 신기술, 신산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전기요금 체계를 글로벌 표준에 맞게 고치고, 연료 가격 변동이 원가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무역 적자 주 요인이 되고 있는 에너지 수입도 줄일 수 있다. 부담이 커질 저소득층이나 한계 계층에겐 에너지 바우처 등을 지원하는 등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