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지난 8월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차별철폐 결의대회'에서 얼음깨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08.24. scchoo@newsis.com

민노총 금속노조 소속 기아차 노조가 성과 보너스 2000만원이 포함된 올해 단체 협약안을 조합원 투표로 부결시켰다. 이유가 기막히다. 장기 근속 퇴직자에게 현대·기아차 구입 시 평생 30% 할인 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것을 75세까지로 제한하고 할인 횟수도 2년 단위에서 3년 단위로 늘린 것을 문제 삼았다. 퇴직을 앞둔 50대 이상 직원들이 부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사원들은 ‘선배들의 이기심’에 기막혀 하고,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선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2019년 작업 시간 중 영화·축구·야구 보는 걸 막기 위해 회사가 와이파이를 차단하자 집단행동을 불사했다. 작년엔 현대차 울산4공장 노조원들이 생산물량을 나눠 달라고 찾아온 전주공장 노조 간부를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 기아 소하지회 노조는 지난해 회사가 5년 만에 생산직 정규직 신규 채용에 나서자 ‘직원 자녀 우선 채용’을 요구했다. 이제는 차값 평생 할인도 고집한다.

세계의 자동차 업계는 자율주행차와 전기·수소차 시대를 누가 주도하느냐를 놓고 사활을 건 혁신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기업의 운명이 걸린 이런 때에 현대·기아차 노조는 ‘철밥통 사수’뿐이다. 더 잘 팔리는 차량 증산조차 못하게 하고 공장 간 생산 물량 배분도 방해한다. 현대차 국내 공장에서 차 한 대당 투입되는 노동 시간은 28시간으로 경쟁사인 도요타·GM보다 11~25% 더 길다. 반면 평균 연봉은 9000만원으로 다른 나라 경쟁사보다 훨씬 높다.

노조의 도덕적 해이는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파산했다가 공적 자금 투입으로 기사회생한 미국 GM은 퇴직 직원 40만명에게 15년간 퇴직자 연금과 건강보험료로 무려 1030억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2010년 경영부실 탓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일본항공(JAL) 역시 과도한 퇴직자 연금이 부도의 주요인이었다.

철밥통이 된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이기주의는 산업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기업들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만드는 주요인이 됐다. 한국의 노동 경쟁력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신규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다.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고 했던 어느 정치인의 말이 틀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