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이 작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미국 트럼프 행정부 국방장관이던 마크 에스퍼가 최근 회고록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동맹의 위험했던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기술했다. 그는 사드 정식 배치가 계속 미뤄지자 “2020년 카운터파트(서욱 전 국방장관)에게 ‘사드의 한반도 철수를 고려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2018년 직접 가본 사드 기지의 생활 여건이 “끔찍”했는데도 문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것이 동맹을 대하는 방식이냐”며 미 합참의장에게 사드 철수의 구체적 방안을 조사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그는 “한국이 중국의 궤도로 끌려가는 상황을 걱정했다”고 적었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과 통화해 “중국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고 칭송했고, 사드 3불(不)로 중국에 군사 안보 주권을 내주는 충격적 양보도 했다. 2019년 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결정에 대해선 “(한일 간 불화로) 북한과 중국만 이득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트럼프는 넌더리난 듯 머리를 흔들며 “이런 위대한 동맹의 가치가 있나”라고 비꼬듯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미국도 이해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2018년 1월 트럼프가 주한미군 가족들에 대한 대피령을 내리려 했었다고 전했다. 대피령은 전쟁 임박을 의미한다. 외교·군사 문외한인 트럼프는 당시 김정은과 ‘화염과 분노’ ‘핵 버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제안했다”고도 밝혔다.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와 남북 쇼 생각뿐인 문 정권이 겹치면서 한미 동맹이 뿌리째 흔들렸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건 미국과의 군사 동맹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미 동맹을 와해시키려고 집요한 공작을 해왔다. 중국도 다를 게 없다.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시도에 국무장관이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죠”라고 하자, 트럼프는 “그렇지, 맞아”라며 미소 지었다고 한다. 2024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당선될 수 있다는 미국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안보와 동맹은 결코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