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정부가 차세대 2나노미터 반도체 공동 개발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2나노미터 반도체는 메모리 선두 주자인 삼성전자나 대만 TSMC도 양산 기술을 갖지 못한 최첨단이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 대만보다 최첨단 반도체를 먼저 개발하는 것이 미·일 협력의 목표”라고 보도했다. 한국·대만 의존에서 탈피해 미·일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새로 짜겠다는 것이다.

인텔·엔비디아·AMD 등의 초일류 반도체 기업들을 보유한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와 반도체 설계·개발의 최강국이다. 일본 역시 1990년대 중반 한국에 메모리 시장을 넘겨주었지만 반도체 제조 공정에 관한 많은 핵심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이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나선다면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1993년 이후 30년간 지켜온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패권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기업이나 국가 간 경쟁 수준을 넘어 국가 연합 간의 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일본 연합뿐 아니라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2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 아래 회원국들이 연합 전선을 펴고 있다. 대만도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는 한편 일본에도 반도체 공장과 R&D센터를 짓고 있다. 기술 전쟁의 핵심 전략 자산인 반도체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국가 간·기업 간 숨 가쁜 합종연횡이 펼쳐지고 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 반도체는 온갖 국내 문제에 발목 잡혀 허덕이고 있다. 주민 반대, 부지 확보, 인력 부족, 대학 정원 규제 등 한둘이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 반도체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해치진 않는다고 보고 한국산 D램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 70%를 용인해왔다. 그런 미국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주도 새 반도체 동맹에서 소외되면 한국 반도체도 40년 전 일본처럼 몰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