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건설노동자들이 3월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차기 정부는 한국노총 건설산업노동조합 비리 문제 즉각 해결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뉴스1

한국노총이 산하 전국건설산업노조 측에 집행부 총사퇴를 요구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건설노조는 조합비 횡령 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노총은 비리 혐의자 영구 퇴출도 요구했다. 한국노총이 관례를 깨고 직접 개입한 것은 건설노조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노총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했다.

건설노조 진모 위원장은 노조비 등 1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조합원들의 조합비가 하루 수백만 원씩 아들 이름 통장으로 들어갔고, 빼돌린 돈으로 아파트를 산 혐의도 받고 있다. 건설노조 조합원은 8만4000여 명으로 매달 조합비만 수억원에 달한다. 15년째 재임 중인 진 위원장은 노조의 주요 집행부를 자신이 임명해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위원장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는 세습 논란까지 일으켰다. 노동조합이 악덕 사업주를 능가하는 비리 행각을 벌인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당연히 이 노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전 지부장이 재임 당시 조합비 3억7000여 만원을 횡령해 유흥비 등으로 쓴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국노총과 민노총에 가입한 근로자는 220만명이 넘는다. 양대 노총 모두 공개하지 않아 액수를 알 수 없으나 매년 엄청난 조합비가 유입되고 있다. 양대 노총 본부의 한 해 예산만 400억원이 넘는다. 유입된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떤 점검을 받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된 적이 없다. 비리가 쌓이고 쌓이다가 내부 고발로 수사를 받아야만 그때그때 비리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최대 개혁 대상은 민주화 이후 성역으로 간주돼온 노조 세력이다. 문재인 정권 5년 사이 민노총은 법치의 해방구에서 불법 시위와 사업장 점거, 사업자와 동료 근로자에 대한 온갖 갑질과 무도한 폭력까지 일삼아 왔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당연히 부패한다. 노동조합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고용노동부가 이번 비리 문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대 노조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노동 개혁은 이런 명백한 비리를 도려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