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이 자영업자·소상공인 320만명에게 1인당 1000만원씩 지원금을 주고 손실 보상 대상도 대폭 늘리는 내용의 최소 35조원 규모 추경안을 강행하려 하자 시중 금리가 급등하는 ‘금리 발작’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주 채권 시장에선 추경 재원 조달을 위해 정부가 국채를 수십조원 발행할 것이란 소식에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치솟아 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은행 대출 금리 등 시중 금리도 덩달아 올라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그러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한은이 국채 매입을 통해 금리 발작을 진정하는 데 역할을 해달라 요구했고 한은은 이에 협조할 뜻을 밝혔다. 당정은 대선을 앞두고 뿌릴 수십조원을 마련하려고 적자 국채를 찍어내고 그 때문에 초래될 금리 상승 등 부작용의 뒷감당을 한은에 맡긴 셈이다. 여당의 선거용 돈 풀기에 한은이 동원됐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은행이 이런 일을 하는 곳인가. 한은의 이번 결정은 선거가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내려 더욱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한은의 발권력이 당정의 선심성 현금 풀기를 뒷받침하는 데 이용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중앙은행을 사실상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작년에도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자영업자 손실 보상금 재원 마련을 위한 국채를 한은이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법까지 만들려고 시도했다. 한은을 당정의 ‘현금 자동 인출기’쯤으로 여긴 것이다.

당정의 방만한 세금 씀씀이에 한은이 이용되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한은이 정부가 발행한 국채 매입을 위해 돈을 찍다 보면 시중 통화량이 많아지고 돈값이 하락해 인플레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넉 달째 3%대 고공 행진 중인 물가가 더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 한은의 ‘협조’ 아래 당정의 습관적 국채 남발이 지속되면 이미 1000조원에 육박한 국가 부채가 더 불어나 국가 신용 등급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음 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은 총재는 재정 포퓰리즘의 2중대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들으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