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1일 오후 서울 성신여자대학교 학위 수여식 날 한 졸업생이 취업 게시판에 걸린 채용 정보를 바라보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대졸 청년들이 취업 시장에서 구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현장에서 쓸 만한 인재를 뽑기 어렵다고 하소연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본지가 최근 기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업들은 여전히 원하는 인력 확보가 어렵다며 대학이 학생 교육 내용을 바꾸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10년, 20년 전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대학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인력 미스 매치는 우리 대학과 교수들이 글로벌 경쟁이라는 인식은 없이 철밥통 매너리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20~30년 전부터 유지해온 학과와 커리큘럼을 고수해도 등록금이 들어오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돈 내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철밥통, 변화 무풍지대,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친다”는 말이 우리나라만큼 잘 들어맞는 나라가 없다.

선진국 대학들은 우리와 정반대로, 4차 산업혁명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기업가, 연구자, 투자가 등이 경쟁하고 협력하고 연구개발하면서 새로운 사업 모델, 플랫폼, 상품, 산업은 물론 사회 혁신까지 선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퍼드와 버클리와 같은 대학을 중심으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 예다. 미국 MIT·프린스턴대, 싱가포르 난양공대와 같은 대학들도 HP·인텔 등 글로벌 기업과 합작해 최고의 인력을 길러내고 있다.

한국 대학은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딴판인 세상을 살고 있다. 반도체·배터리·소프트웨어 같은 첨단 산업의 기업들은 대학 졸업생들을 새로 가르쳐야 한다. 대학이 창의력과 혁신 역량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실무 능력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게임 회사가 신입 사원에게 코딩 과외를 하고 배터리 회사가 별도의 물리학 강좌를 개설해 가르치는 일이 흔한 일이 돼버렸다. 급기야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처럼 기업들이 직접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LG는 최근 오창 공장에 세계 최초로 배터리 전문 교육기관을 세우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세계 첨단 수준에서 경쟁하겠다는 교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학생은 대학에 대한 기대를 접고 돈 내서 졸업장을 따겠다는 생각뿐이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대학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학 교육을 교수 등 공급자 중심에서 기업과 사회 등 수요자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바꾸는 혁신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대학이 교육부 관료 손아귀 안에 있는 한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대학 교육은 낡고 낡아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