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 결승에서 한국 양궁 사상 첫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3관왕이 된 여자 양궁의 안산 선수를 둘러싼 젠더 논란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번졌다. 일부 여성혐오 사이트들을 중심으로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라서 쇼트커트 머리를 했고 SNS에 젠더 편향의 용어도 사용했다면서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진 것이다. 양궁협회 사이트 자유 게시판엔 30일 오후까지 1만개 가까운 관련 댓글이 올랐다. 영국 BBC는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더러운 의미의 단어가 돼버렸다”고 했고 로이터통신은 “안산 선수가 온라인 학대를 받고 있다’고 하는 등 외신들까지 사태를 주목했다.

안산 선수에 대한 온라인 비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이 그 사람의 젠더 성향을 보여준다고 보는 것부터가 비논리적이다. 안산 선수가 SNS에서 썼다는 ‘오조오억’이라는 용어도 젊은이들이 굉장히 큰 숫자를 의미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이런 걸 남성 비하라고 비방하는 것은 댓글 단 이의 편견을 보여줄 뿐이다. 안산 선수 공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자 양궁 김제덕 선수를 향해서도 상스러운 댓글들이 올랐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여성이 받는 사회적 차별을 개선하자는 주장이다. 설령 그런 입장을 갖는다고 해서 비난 받을 일은 전혀 아닌데도 사태가 이렇게 번졌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8~29세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55.1%로 민주당 지지율의 3.7배였다. 같은 연령대 여성들의 민주당 지지율은 42.1%로 국민의힘의 1.9배였다. 젠더 갈등이 정당 지지를 결정지을 수준의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양성 평등 이슈가 부각된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 젊은 세대가 미래 희망을 갖기 어렵게 돼버린 경제 상황이 배경에 있다고 봐야 한다. 20대 청년층의 은행 대출 규모는 현 정부 출범 직전 16조4000억원이던 것이 4년 만에 43조6000억원이 됐다. 빚의 상당 부분은 영끌로 집을 사거나 빚투로 가상 화폐에 투자한 결과일 것이다. 특히 청년들은 취업난에 부딪혀 좌절해 있다. 며칠 전 통계청 발표를 보더라도 취업 시험을 준비 중인 청년(15~29세) 인구가 85만9000명이나 됐다. 2006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3년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연애, 결혼, 출산 포기의 ‘3포 세대’란 말이 광범위하게 공감을 얻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남녀 청년층이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을 겪으면서 앞날에 대한 좌절감을 상대 쪽 성(性)에 대한 공격적 분노로 분출시키고 있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올바른 정책으로 경제를 다시 끌어올려 작은 파이를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전체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 젠더 갈등은 지역 감정처럼 치유가 어려운 사회 갈등으로 고착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