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발 가상화폐 투자열기가 고조되면서 미국 실리콘밸리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장난삼아 만들었다는 도지코인 가격도 미친 듯이 뛰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에 설치된 전광판에 도지코인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한국의 코인 광풍은 유난해 하루 가상화폐 거래량이 코스피 거래량을 넘어선지 오래다./뉴시스

한국의 가상 화폐 투자자가 5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절반이 올 1분기에 새로 뛰어든 사람이고, 그 60%가 2030세대다. 가상 화폐 투자용 은행 계좌가 매일 7만개씩 새로 만들어지고, 코스피 시장의 2배인 하루 30조원어치가 거래되고 있다. 가상 화폐의 대표인 비트코인 거래량은 전체의 6%에 불과하고, 나머지 94%는 이른바 ‘잡(雜)코인'들이다. 거래 코인 중 3분의 1은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한국에서만 거래되는 이른바 ‘김치코인’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다. 한국 가상 화폐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이상하고 기이하며 위험한 시장이 됐다. 그런데 정부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자 정부가 지난달 허겁지겁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는 것과 “가상 화폐 거래소가 9월에 전부 폐쇄될 수 있다”는 엄포뿐이었다. 가상 화폐를 양성화하면 투기 열풍이 더 거세질까 겁나고, 억제책을 내놓으면 2030세대의 표를 잃을까 갈팡질팡하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가상 화폐 투기 열풍은 2030세대를 넘어 5060세대로 확산돼 노후 자금까지 투기판에 가세하고 있다. 한 가상 화폐 거래소 경우, 50대 이상 이용자가 6개월 새 1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가상 화폐 시장이 붕괴하면 수많은 청년과 중장년층이 감당키 어려운 손해를 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정부 부처들은 폭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법정 화폐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상품 업무 주무 부처인 금융위는 저마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다 눈덩이처럼 투기판을 키우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가상 화폐 투자수익을 ‘기타소득’으로 간주해 내년부터 과세하겠다고 한다.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세금은 내라니 누가 봐도 모순이다. 이런 정책으론 국민과 투자자를 설득할 수 없다. 보다 못한 국회 입법조사처가 “가상 화폐 주무 부처를 지정하거나 범정부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라”고 주문할 정도다.

미국·일본·홍콩·싱가포르·프랑스 등은 가상 화폐를 순차적으로 제도화하면서 투자자 보호도 강화하고 있다. 누구나 가상 화폐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어 200여 거래소가 난립 중인 우리와 달리 선진국에선 가상 화폐 거래소는 금융 당국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고객 재무 상황에 따라 개인별 거래 한도를 설정하거나(홍콩),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의무까지 지우는 등(일본) 가상 화폐 거래를 규제하면서 투자자는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주요국 중 우리만 위험한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가상 화폐뿐 아니라 주식, 부동산, 원자재 등 자산 버블 현상이 세계 공통의 고민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의 경고도 나왔다. 한국의 코인 광풍만큼 이 경고에 부합하는 현상도 없다. 정부 차원에서 도를 넘은 투기에 제동을 걸고 제도적 관리 체제를 갖춰야 한다. 더 방치했다간 20여년 전 ‘닷컴 버블' 붕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경제·사회적 재앙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