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면서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투자 재촉 이후 미국, 대만 반도체 기업과 일본 정부가 발빠르게 호응해 미국, 일본, 대만 중심의 '반도체 동맹'이 구축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미국 인텔,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19곳을 초대해 “우리 경쟁력은 당신들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압박한 이후, 동맹국 정부와 기업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인텔은 오래전 접은 반도체 제조·생산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고, 대만 TSMC는 새로 짓는 미국 반도체 공장을 1개에서 6개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일본 스가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반도체, 5G, 인공지능 분야에서 공동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또 대만 TSMC는 일본에 반도체 설계 연구소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고 미국 중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새로 구축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일본과 대만이 적극 호응해 반도체 삼각 동맹이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나 기업 차원의 대응이 전혀 안 보인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삼성전자는 미국에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해놓고 결정을 못하고 미적대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도 의견 수렴을 한다면서 업계 간담회를 열고 특위를 만들고는 계속 뜸만 들이고 있다. 반도체 대중 수출 비중이 40%에 이르고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중국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사정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미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올라타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 미국은 반도체 개발·설계 분야의 압도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1980년대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자 미국 정부는 반덤핑 조사, 지식재산권 침해 제소 등으로 압박해 일본을 주저앉혔다.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는 이 틈새를 파고들어 반도체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 반도체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해치진 않는다고 보고 한국 D램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 70%를 용인해왔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한미 동맹 기반 위에 서 있는 셈이다. 한국 반도체의 미래도 미국 중심 반도체 동맹에 올라타야 새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한국이 취약한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세워 미국 IT 기업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범용 메모리반도체는 중국 내 공장에서 현지 생산, 현지 판매하는 투 트랙 전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전략 구상은 기업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 간 대화·협상이 중요하다. 5월 미국을 방문할 문재인 대통령은 치밀하게 조율된 반도체 대응 전략을 갖고 바이든 대통령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간 40년 전 일본 반도체의 전철을 밟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