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각)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기업과 삼성전자, 대만 TSMC 등의 CEO들을 화상으로 초청해 개최한 ‘반도체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20세기 세계를 주도했다.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며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웨이퍼까지 들고 나와 흔들면서 “우리의 경쟁력은 (회의 참석한) 당신들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등에 미국 내 투자를 늘리라고 압박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 산업 전략까지 챙긴다는 것이 놀랍다.

해외에 의존하던 반도체 생산을 미국 영토 안으로 가져와 자기 완결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다. 미국은 반도체 개발과 설계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생산은 세계 생산량의 12%에 불과하다. 자체 생산 대신 대만(세계 생산 점유율 22%)·한국(21%)·중국(15%)·일본(15%)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앞으론 반도체 생산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호응해 인텔이 오래전에 철수한 제조·생산 분야에 다시 뛰어들기로 했다. ‘설계는 미국, 생산은 아시아'라는 국제 분업이 깨질 상황이다.

그로 인한 충격은 전체 수출의 20%를 반도체 한 품목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강하게 닥쳐올 수밖에 없다. 미국은 세계 1·2위 메모리 반도체 메이커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도 미국 내 공장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에 170억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고 SK하이닉스도 공장 증설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내 투자가 늘어날수록 한국 내의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첨단 공법의 최신 반도체 생산라인이 미국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견제’도 언급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對)중국 수출 봉쇄 대상을 차세대 반도체 장비뿐 아니라 현재 사용되는 주력 장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럴 경우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가동하는 메모리 공장의 첨단화도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중국의 기술 패권 싸움이 눈앞의 리스크로 닥쳐오고 있다.

이 격변기에 삼성전자는 총수가 투옥돼 있다. 정부 차원의 전략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1위지만 차량용 반도체 자급률은 2%에 불과하다. 세계적 공급 부족 사태로 1달러짜리 반도체 칩이 동나자 현대차가 생산라인 일부를 멈출 정도로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 중국, EU 등 강대국들은 반도체 주도권을 놓고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뛰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제1 관심사는 언제나 선거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