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에 앞서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밀어붙이면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대한 유감 표명이다.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대해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문제로 국정 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자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송구”라는 한마디에 이어 붙인 말들을 보면 국민에게 사과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대통령은 또 “권력기관의 권한을 분산하고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잘라내기 위해 온갖 법과 규범을 짓밟는 무리수를 거듭해온 이유는 한 가지다. 윤 총장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옵티머스⋅라임 펀드 사기, 울산시장 선거공작 같은 권력 의혹들을 수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가 월성 1호기 폐쇄를 주도한 산업자원부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 청구가 이뤄진 시점에 허겁지겁 시작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감히' 살아있는 권력의 잘못을 들춰내려는 윤석열 체제를 들어내서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을 정치에 완전히 종속시키려는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그래서 문재인 청와대는 법과 국민 위에 존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국민도 이런 사정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여론조사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윤 총장보다 추 장관에게 있으며 물러나야 할 사람은 추 장관이라는 응답이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이 추 장관과 윤 총장 두 사람 사이의 일인 양 딴청을 펴왔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것도 추 장관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걸 국민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이 정말 국민에게 송구하다면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시도가 애초에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거둬들이면서 추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인사 조치를 꺼내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의 말은 정반대였다. 윤석열 징계 사태가 “권력기관 개혁의 결실을 맺는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기 때문에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말로만 대통령으로서 송구하다고 해놓고 모든 잘못이 윤 총장에게 있다고 떠민 것이다. 10일 징계위에서 윤 총장을 해임하고 공수처장을 권력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고를 수 있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기존 계획을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1년 전 조국 사태 때도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한마디를 한 뒤, 나머지는 검찰 탓, 언론 탓만 했었다. 대통령은 도대체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말을 어떤 생각으로 던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