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왼쪽) 산업은행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 전기 출판기념회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전기 만화책 출판기념회에서 “이 전 대표가 하신 말씀 중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것이 ‘우리(민주당)가 20년 (집권)해야 한다’고 한 것”이라며 “민주 정부가 벽돌 하나하나 열심히 쌓아도 그게 얼마나 빨리 허물어질 수 있는지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가자!’고 외치면 모두가 ’20년!'으로 답해달라. 30년, 40년을 부르셔도 된다”고 건배사를 제안했다. 정치인도 아닌 국책은행 수장이 공개 석상에서 특정 정당의 장기 집권을 노골적으로 기원한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산은 회장 발언 맞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회장은 얼마 전 산업은행 수장으로서 26년 만에 연임이 확정됐는데 그에 대한 감사 표시를 이렇게 하는 건가.

덕담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이 회장 발언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연간 40조원이 넘는 자금을 중소·중견기업에 공급·관리한다.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 조직의 수장이 ‘여당 20년 집권’과 같은 너무나 노골적인 정치 구호를 외친다니 지금 산업은행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산업은행은 대북 불법 송금이란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 회장의 여당 20년 집권 구호는 그 같은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처럼 들린다.

전 정권 여당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 건배사를 한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해 "본분을 망각한 망발”이라며 탄핵소추안까지 발의한 게 지금의 민주당이다. 그런 민주당이 정권을 잡자 국책은행장이 공개 석상에서 ’20년 집권으로 가자'고 한다. 민주당 인사들은 웃고 박수를 친다. 직분에 따른 분별을 지키고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 자중하는 것은 이 정권의 오만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덕목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