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 함께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권력 기관장 회의를 주재하면서 회의장에 추미애 법무장관과 동시에 입장했다. 국정원장, 행안부 장관 같은 다른 참석자들은 미리 대기하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보란 듯이 추 장관과 나란히 회의장에 들어선 것이다.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어떤 자리에 어떻게 배치하느냐는 그 자체로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대통령이 권력 기관장 중 추 장관 한 사람만 선택해서 함께 입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최근의 ‘추미애 논란’에 대해 대통령은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날 권력 기관장 회의는 추미애 장관 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이 증폭되는 와중에 열리는 시점 때문에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을 끌었다. 대통령은 하루 전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37번이나 언급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불공정의 사례를 본다”면서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고도 했다. 그런 만큼 많은 국민이 추 장관이 참석하는 이날 회의를 계기로 이번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듣고 싶어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관련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동시 입장’으로 답을 대신한 것이다. 청와대는 “추 장관은 행사장 바깥에서 대통령 영접 목적으로 대기하다가 만나서 들어온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 대통령은 대신 권력 기관 개혁에 대해 “어려운 일이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조직을 책임지는 수장부터 일선 현장에서 땀 흘리는 담당자까지 자기 본분에만 충실할 수 있게 하면 된다"고 했다. 말 자체는 틀린 게 없다. 그런데 이 정권이 지금까지 자기 본분에 충실하게 일하던 사람들을 어떻게 다뤄왔나. 문 대통령이 임명한 추 장관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 ‘유재수 감찰 무마’ 등 정권의 불법 혐의를 수사했던 검사팀을 공중분해하고 검찰총장 손발을 잘라 식물 총장으로 만들었다. 이들을 쫓아낸 자리는 모두 ‘추미애 사단’으로 채웠다. 그 결과 민주당 의원이 연루된 라임펀드 비리, 박원순 전 서울시장 피소 사실 유출, 어용 방송과 친정부 검사들의 채널A 사건 조작 의혹 등까지 노골적으로 정권 편을 들던 '애완견’이나 다름없는 검사들 손에 맡겨졌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대통령 본인이 “우리 정권 비리도 똑같이 수사하라”고 해놓고 실제로 칼끝이 정권을 향하자 안면몰수하고 인사 학살을 자행했다. 자신의 가족과 측근을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을 통째로 날리는 일은 군사정권 때도 없던 일이다. 자기 본분에 충실해온 사람들을 다 날려놓고서는 “자기 본분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게 권력 개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