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2일 대우조선 하청노조 근로자들이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파업 구호를 내걸고 도크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 하청 노조가 용접 숙련공 월급이 200만원밖에 안 된다고 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설마 그럴까?’였다. 그런데 팩트였다. 대우조선 정규직 용접공의 월급은 500만~600만원인 반면 비정규직 용접공은 200만원대다. 하는 일은 대동소이한데 임금은 2~3배 차이라니?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 파업 구호에 다시 눈길이 갔다.

대우조선 파업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세 가지 중병을 세상에 알렸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2중 구조와 그에 따른 임금 양극화, 기업 내 식민지 같은 다단계 하청 구조, 정치 논리에 휘둘려 조선업 구조 개편을 미뤄온 정부와 산업은행의 직무 유기가 그것이다.

조선업 종사자의 삶을 심층 취재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 경남대 양승훈 교수는 “직무급을 도입해야 원·하청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대우조선 근로자 4명 중 3명이 비정규직이다. 위험한 선박 내부 용접은 비정규직이 주로 맡고 외부 용접은 정규직 용접공이 맡는데, 임금은 거꾸로 정규직 용접공이 2~3배 더 받는다. 현대차 생산 라인에서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끼우고, 왼쪽 바퀴는 하청 근로자가 끼우는데 정규직 연봉은 1억원에 가깝고, 하청 근로자는 3000만원대에 그친다. 이런 불공정을 없애려면 호봉제 대신 직무급을 도입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 능력, 성과와 상관없이 급여가 매년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호봉제와 달리 직무급은 직종·직업, 업무 난이도에 따라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하는 것이다. 5년 전 문재인 정부는 직무급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노동계가 반발하자 바로 접어버렸다.

호봉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더 벌리고, 기업이 신규 고용을 꺼리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기업들은 고비용·저효율 고령 근로자를 줄이려 무리수를 둔다. 은행같이 돈 잘 버는 기업은 3년 치 연봉을 미리 주고 명예(?) 퇴직이라도 시키지만, 그러지 못하는 기업들은 지방·한직 발령 등 무리한 인사로 이들을 쫓아낸다. 사오정(실제 정년은 45세), 오륙도(56세에 직장 다니면 도둑놈)란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직무급 도입을 국정 과제로 삼고, 공공 기관부터 시행하겠다고 말한다. 공언대로 ‘임금 체계 개혁’ 하나만 해결해도 큰 업적을 남긴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직무 분석 작업이 앞서야 하는 직무급 도입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정규직·비정규직 간, 원청·하청 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별도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SK하이닉스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하이닉스에선 노사가 임금 상승분 10%를 상생 기금으로 갹출해 하청 근로자 급여 인상, 복지 재원으로 쓰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사정 대화 기구(경사노위) 대표를 지낸 노동계 원로는 “호황·불황이 반복되는 조선 업종에서 모든 인력을 원청이 직접 고용할 수는 없다. 잘될 때 불황에 대비해 ‘고용안정기금’을 원하청 노사가 만들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대우조선 하청 노조 파업은 선박 덤핑 수주 후 다단계 하청을 통해 적자를 모면하려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풀 방법도 찾아야 한다. 국민의힘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한 ‘납품 단가 연동제’ 속에 다단계 하청에 제동을 거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혈세로 연명하는 대우조선이 제 살 깎기식 출혈 경쟁을 자초하는 부조리극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10년 이상 방치해온 조선업 구조 개편 숙제를 이번엔 반드시 마무리해야 한다. 하청 근로자들이 이대로 살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