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은 2019년 말부터 요금이 저렴한 알뜰폰을 은행 창구에서 팔고 있다. 원래 은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모래 놀이를 하듯 규제 신경 쓰지 말고 해보라는 ‘샌드박스’를 적용, 혁신 금융 서비스 1호 사업으로 허가를 받았다. 요금 할인을 내세워 가입자 늘리기에 나섰다. LTE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4만4000원인데, 국민은행에 급여 계좌를 만들거나 하면 최대 2만원을 할인받아 2만2000원이 된다. 국민 카드를 일정액 쓰는 등의 조건도 채우면 1만5000원을 더 깎아줘 7000원이 된다. 이렇게 요금을 깎아주는 대신 충성 고객을 늘리려고 했다. 가입자 100만명이 목표였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국민은행은 국내에서 지점이 가장 많은 은행이다. 900곳이 넘는다. 지점당 하루 몇 개면? 한 달, 1년이면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 헛계산이었다. 현재 가입자가 11만명쯤 된다.

은행 측은 서투른 데다 서둘렀다. 요금 할인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가 뒤늦게 보완책을 만들고 있다. 노조는 불만이 많았다. “우리가 은행원이지 ‘폰팔이’냐?”고 얼굴을 붉혔다. 지난 4월 재허가 과정이 시끄러웠다. 노조는 “은행 고유 업무 수행에 지장을 주고, 판매 압박 탓에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여곡절 끝에 2년 연장됐지만, 지점에서 가입자 늘리는 건 사실상 포기했다.

국민은행 직원 평균 연봉은 1억400만원으로 국내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많다. 올 상반기 순이익이 1조4226억원으로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많다. 직원들이 “그깟 알뜰폰 안 팔아도 된다”고 할 만도 하다. 귀찮고 성가신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탐탁지 않았을 테고, 화이트칼라의 상징인 은행원 자존심에 금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얼마 전 국민은행 임원에게 다른 말을 들었다. “스페인에서 삼성전자 갤럭시폰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곳이 ‘카이샤뱅크’라는 은행이라는 걸 아느냐”고 했다. “우리는 지점에서 알뜰폰 가입자에게 휴대전화를 직접 건네주지 않는다. 가입 서류만 작성하고 휴대전화는 따로 보내주는데 카이샤뱅크는 휴대전화를 직접 판다”고 했다. 국민은행 노조 말대로라면 그야말로 ‘폰팔이’를 하고 있는 은행이다.

며칠 전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몇 년 전 비바리퍼블리카라는 스타트업의 사무실을 방문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40명쯤 있는 사무실 한쪽에 컵라면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간편 송금 서비스인 토스 앱을 운영하면서 몸집을 키운 그 회사는 오는 9월 토스뱅크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킨다. 20대의 80%, 30대의 67%가 토스 앱을 쓴다. 시중은행들을 늙은 은행으로 만들어버릴 젊은 은행이 등장하게 된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기존 은행들이 신규 고객을 늘리고 싶어하는 미래 성장 고객인 2030세대를 빨아들이고 있다. 만 14~19세 인구 가운데 39%가 카카오뱅크 가입자라고 한다. 다음 달 6일 코스피에 상장하는 데 시가총액이 18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국민은행 지분을 100% 보유한 국내 1위 금융그룹 KB금융(21조원)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혁신은 쉽지 않다.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반드시 저항과 동행한다. 오죽하면 ‘저항이 없으면 혁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겠나. 세상은 멈춰 서 있지 않다. 움직이고 달라진다. 오늘 1등이 내일도 1등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은행만의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