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 화려한 야경사이로 한강이 도도히 흐르고있다. /박상훈 기자

몇 년 전 한 공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다. 50대 초반 부장이 사장에게 임원 승진을 제안받고, 고사에 고사를 거듭하다 결국 승진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그는 입사 동기들을 불러 모아서 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자축 자리가 아니라 위로주를 사달라고 불렀다고 한다. “60세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데 본부장이 되면 2년 임기에 1년 추가한다 쳐도 3년 뒤면 퇴사해야 하니 어쩌냐” “아직 애들 어린데 큰일이다”라는 동기들의 위로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 뒤 이어지는 장면은 스릴러 영화에 나올 법한 반전이다. 잔뜩 마신 그는 대리 기사를 부르지 않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고 한다. 평소 음주 운전 단속이 잦은 곳으로 곧장 차를 몰고 갔고, 당연히 음주 운전으로 적발됐다. 그는 의도했던 대로 결격 사유가 생겨서 임원 승진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징계야 받았겠지만, 공기업에서 그런 걸로 잘리지는 않는다. 어느 공기업에서는 승진 위기에 몰린 50대 부장이 집을 한 채 더 샀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1가구 2주택자라 승진하면 안 된다”고 당당하게 자백하고 승진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일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직장인 공기업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회사가 빚에 파묻혀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빚은 정부가 갚아주는 공기업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민간 기업이라면 임원 절반이 날아가고, 구조 조정으로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어야 할 빚더미를 안고 있는 공기업들이 숱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공기업 리스트를 보면 지뢰밭이 생각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공기업 부채가 심각하다는 것은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어서 새롭지 않지만, 엊그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또 한번 경고장을 날렸다. 비금융 공기업 부채는 201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3.5%에 달한다고 했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회원국 평균(12.8%)의 2배나 된다. 이 빚 잔치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치르게 된다.

공기업의 빚더미와 무능, 비효율은 민간 기업이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공기업에는 기업가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직 재무부 장관이 미국 명문 대학 경제학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시장에 강하게 개입했는데 어떻게 한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느냐?”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시장을 질식시키지 않고, 세계적인 기업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때 우리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정부를 운영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은 실패할 요인들이 산처럼 쌓인 나라였다. 1960년 10월 미국의 국제 정치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스'는 한국을 이렇게 표현했다. “실업자는 노동 인구의 25%이며,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에 경제 기적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기적을 만들어 냈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기업가가 갑자기 나타났느냐”는 것이라고 한다. 한 전직 청와대 경제수석은 하버드대 연구진의 질문에 “정부가 강한 주도권을 갖고 기업들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잠재돼 있던 기업가적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부분이 문재인 정부와 다른 점이다. 현 정부는 기업가 정신을 꺾고 있다. 민간 기업을 공기업처럼 대하고, 공기업처럼 굴도록 만들고 있다. 규제하고, 조사하고, 기업인들을 가두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나라는 앞으로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