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한 관람객이 영화 ‘한산 :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 포스터 옆을 지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다. /뉴스1

흥겨운 파티는 끝났고 냉정한 결산만 남았다. 올여름 한국 영화의 흥행 성적은 넉넉하게 잡아도 ‘2무 2패’에 가깝다.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영화였던 ‘한산’(675만명)과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313만명)가 간신히 한숨 돌렸을 뿐, 나머지 두 편은 흥행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이 영화들은 관객 460만~600만명을 동원해야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지만, 최종 결산하면 청신호보다는 적신호가 켜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코로나 장기화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영상 서비스(OTT)의 급부상까지 흥행 부진의 사유는 적지 않다. 지난 2년간 영화 티켓 가격이 25% 가까이 인상된 것도 관객들의 지갑 부담을 가중시켰다. 주말 기준으로 1만5000원이면 웬만한 OTT 한 달 구독료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모든 악재(惡材)가 앞으로 변수보다는 상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흥행 부담은 더욱 커진다는 뜻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극장 개봉작들은 평평한 레이스를 질주하는 100m 단거리 선수와도 같았다. 특히 방학과 휴가 시즌이 겹치는 한여름 극장가는 회전율 높은 인기 식당처럼 관객들을 빨아들였다. 하루 관객 100만명을 넘어서는 영화들이 수두룩했고, 1~2주면 1000만 관객 달성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OTT와 티켓 가격 상승 같은 허들을 줄줄이 넘어야 하는 장애물 경주가 될 공산이 높다. 경기 종목이 바뀌면 방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과연 코로나 이후 영화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향방은 가늠할 수 있다.

우선 극장 관람과 안방 시청의 양분화는 심화될 공산이 높다. 넷플릭스와 극장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보완재(補完財)인지,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체재(代替財)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난 2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선택권이 관객들에게 넘어갔다는 점이다. 공급과 소비의 역학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관객 평점과 영화평을 꼼꼼하게 살핀 뒤 비로소 예매하는 ‘스마트 컨슈머(smart consumer)’가 늘어날지언정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극장에서 관람할 영화를 깐깐하게 따진다는 건, 대형 스크린에 어울리는 블록버스터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유일하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2′ 역시 기존 형사물보다는 오히려 한국판 수퍼 히어로 영화에 가까웠다.

관객들은 형사 역의 배우 마동석이 혹시라도 범인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거꾸로 악당들을 언제든 신나게 두들겨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동석의 주먹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예외 없이 음향 효과가 극대화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탑건: 매버릭’ 역시 안방 화면과 휴대 전화로는 구현 불가능한 시각적 쾌감이 없었더라면 흥행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들이 높아지면 결국 타격을 입는 건 신인들의 데뷔작이나 저예산 독립·예술 영화들이다. 가뜩이나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 검증된 인기 감독과 배우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한국 영화계다. 그 경사가 더욱 심해지면 간절하게 입봉을 기다리던 신인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참신한 기획으로 꾸준히 히트작을 내는 OTT 드라마 시장의 역동성과도 사뭇 대조적이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한국 영화계는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반성 없는 논의는 탁상공론이나 공염불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