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해군 대위 윤두호(80)씨는 서울 강동구 보훈병원에 1년 넘게 입원 중이다. 2002년 6월 29일 제2 연평해전에서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다. 지난해 봄 뇌졸중으로 쓰러져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재활 치료를 받는 윤씨는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영하가 너무도 그립다”고 했다. “군인 자식 둔 아비, 어미로서 감당해야 할 일”이라며 오열하는 유가족을 담담하게 다독여왔던 그였기에, 수화기 너머 떨리는 음성과 울먹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제2 연평해전이 잊힌 전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건 2012년 10주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윤 소령 어머니 황덕희씨는 “속상하고 답답할 때마다 악물어 어금니가 조각난 지 오래”라고 했다.

서해수호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월 23일 경기도 수원시 삼일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참수리 357호 모형이 놓여있다. 삼일공업고등학교는 천암함 피격으로 전사한 故 박경수 상사의 모교이다./뉴시스

2022년 6월 대한민국은 스무해 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와 감동을 되새기고 있다. 축구 대표팀과 브라질의 친선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어게인 2002′ 문구가 관중석에서 물결쳤다. 20년 전 한국과 터키의 3·4위 결정전이 열린 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맞서 산화한 여섯 용사를 지금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메모리얼 데이(미국 현충일)인 지난달 30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민주주의는 옹호해 줄 투사들이 필요하다. 군인과 가족들이 겪은 희생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본보기 중 한 명으로 꼽은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용사들이 이곳에서 이뤄낸 것을 (세상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사명에 헌신하자”며 ‘남은 이들의 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러시아 침공에 100일 넘게 맞서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전 초 수도 키이우 병원을 찾아 부상병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악수하며 결사 항전 의지를 다지는 장면은 4300만 우크라이나 국민이 하나로 뭉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지난달에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게 불렀다.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공유하며 국민 통합을 위해 한 걸음 내디딘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윤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더 이상 영웅들의 희생이 남겨진 가족의 눈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재임 중 제2 연평해전 기념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전임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행보다.

오는 29일 20주년 기념식은 ‘국가 안보와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헌법 5조 2항)를 사수(死守)한 여섯 용사에게 군 통수권자가 ‘기억의 의무’를 다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위협에 맞서 ‘싸우면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결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달 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 참석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한 유가족은 “정상회담과 날짜가 겹친다면 기념식 일정을 하루 이틀 조정해도 괜찮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꼭 참석해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자리가 되길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유가족 곁을 오래 지켜온 추모본부의 구호는 ‘리멤버 357′이다. 영웅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윤영하·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박동혁 ‘연평 6용사’ 이름을 딴 고속함 6척이 서해 파도를 가르는 가운데, 군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이 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