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가 국민 2%에 속하는 부자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63세 할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는 “20억~30억원 전세 사는 사람은 놔두고, 경기도 용인의 집 두 채 더해도 9억원이 안 되는 나한테 종부세를 내라니 너무 불공평하다”며 “가난에서 벗어나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절약한 게 죄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집값 상승과 종부세율 인상 등의 영향으로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과 대상자가 크게 늘어 95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 세액도 5조7천억원까지 늘어났다. 다주택자와 법인의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번 종부세 고지 인원 중 2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51.2%(48만5천명)로 이들이 부담하는 세액은 전체의 47.4%(2조7천억원)다. 사진은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구와 서초구 일대의 모습. 2021.11.22 /연합뉴스

주택과 토지분을 더해 사상 처음으로 종합부동산세 대상자가 100만명이 넘었다. 정부와 여당이 “전 국민의 98%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듭 해명했지만 “엉터리 통계” “국민 갈라치기” 같은 역풍(逆風)이 거세다. 2005년 종부세가 처음 도입됐을 때도 ‘세금 폭탄’ 반발과 위헌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주택분 종부세를 낸 3만6000명은 현 정부 방식으로 계산하면 상위 0.07%에 드는 ‘자타공인’ 부동산 고액 자산가였다.

올해 종부세 대상자의 조세 저항이 유독 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다수 국민은 종부세를 일종의 ‘부유세’로 받아들이는데, 납세자 중 상당수가 정부의 ‘부자 인증’이 엉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적표를 받은 학생이 채점 기준이 이상하다고 학교에 항의하는 꼴이다. “잘못 채점한 학생이 몇 명뿐이니 괜찮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현행 종부세 산정의 큰 맹점은 부동산 자산 가치만큼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세금 부담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다. 올해부터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 금액이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올랐지만, 다주택자 공제 금액은 그대로 6억원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전용면적 84㎡) 1채를 보유한 A씨는 종부세를 내지 않는다. 최근 실거래 가격이 17억원이 넘지만, 공시가격은 11억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세종시 ‘도램마을 15단지’(전용 84㎡)와 충남 공주시 ‘효성 해링턴 플레이스’(전용 74㎡)를 가진 B씨는 종부세를 110만원 정도 내야 한다. 세종과 공주 아파트 두 채의 시세를 더해야 12억원 정도이고, 공시가격 합은 7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B씨에게 종부세는 상위 2% 부동산 부자가 내는 세금이 아니라 ‘2주택자 벌금’인 셈이다.

“종부세는 무차별 폭격이 아닌 정밀 타격” 운운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에 분노하는 사람도 많다. 납세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국민에게 ‘폭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종부세 대상자는) 우리 쪽에 투표할 사람이 아니니까 때려잡는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게 정상적인 정권인가.

문재인 정부는 집값 잡겠다며 집을 사서(취득세), 거주하고(보유세), 파는(양도세) 모든 세금을 올렸다. 무자비한 세금 채찍에도 2017년 5월 6억7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지난달 기준 12억3700만원이 됐다. 급등한 집값에 절망하는 무주택 서민들은 이제 주거비 증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주택자에게 부과한 거액의 세금은 어떤 식으로든 세입자의 전세·월세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조선 세종은 재위 9년 만인 1427년 3월 과거 시험에서 “백성 사랑은 세금 제도에서 시작한다”며 효과적인 세제 시행 방법을 물었다. 세종이 낸 문제에 맹자(孟子)가 말한 ‘취민유제(取民有制)’가 등장한다. 백성에게 거둬들이는 것(세금)에는 일정한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백성이 억울하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걷는 세금이 좋은 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이 절제와 공정함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여당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감면 얘기까지 나오니 선거철이 맞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