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삼성서울병원은 ‘병원 중의 병원’으로 꼽힌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외래 환자만 연간 235만명이다. 한 해 수익은 1조7000억원을 넘는다. 암과 심장·뇌혈관 분야 등에선 세계 최정상급 수준이란 해외 언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기에 ‘삼성이 운영하는 병원’이란 후광까지 더해져 한국을 대표하는 병원으로 각인돼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전경./삼성서울병원

이런 삼성서울병원이 작년 말 정부의 의료 질 평가에서 ‘최상위 병원 탈락’ 판정을 받았다. 국내 ‘빅5′ 병원 중 첫 탈락이었다. 한국 대표 병원이라는 곳이 최상위 병원(8개)에 들지 못하고, 그 밑의 차상위 병원(28개)으로 떨어진 것이다. 언론 보도로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딱 하나였다.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복지부와 삼성서울병원은 “원래 비공개 평가”라며 함구하고 있다.

복지부는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부터 매년 300여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의료 질 평가를 해왔다. 미국을 본뜬 제도다. 미국은 지역별 병원이 환자에게 어떤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평가해서 상위 50% 병원의 명단을 공개한다. 그런데 한국은 환자를 위한 평가라고 해놓고 그 결과를 환자에겐 비밀로 한다. 병원에만 공개한다.

복지부의 의료 질 평가 항목을 보면 환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넘쳐난다. 폐렴·급성기뇌졸중·천식 치료 수준, 혈액 투석·관상동맥우회술 수준, 분만실·응급실·중환자실 운영 수준, 환자당 의사 수, 항생제 처방률…. 환자들이 이 평가 결과들을 안다면 분명 병원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환자들은 이것을 알 권리가 있다. 하루 방문 환자만 1만명인 삼성서울병원의 문제라면 더 알아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의 등급 하락 이유를 공개하라는 언론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복지부는 “관련 고시에 의료 질 평가를 공개하라는 내용이 없다”고 하고 있다. 잠꼬대 같은 말이다. 이 고시는 복지부가 언제든 만들고, 바꾸고, 삭제할 수 있는 자체 규정일 뿐이다.

환자와 의사의 힘 차이 때문이라면 억측인가. 병든 환자는 힘이 없다. 정부 의료 정책을 따질 지식도 없다. 그러나 병원을 움직이는 의사는 의료 지식과 ‘진료 거부 단체 행동’으로 정부에 맞설 힘이 있다. 혹시나 자기 병원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의료 질 평가가 외부에 공개되는 걸 좋아할 리 없다. 눈치 빤한 공무원들이 이런 의사들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선진 정책’을 시행했다는 광을 내려다 벌어진 일이 지금의 ‘환자만 모르는 환자를 위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복지부와 삼성서울병원이 입을 닫는 사이 이상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다. “응급실 운영에 큰 문제가 있다더라” “전반적인 진료 질이 확 떨어졌다더라” 같은 것이다. 불안의 고통은 또 환자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