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아동의 대모' 강명순 목사/조선일보 DB

지난 2008년 출범했던 18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1번은 ‘빈곤 아동의 대모’로 불리던 강명순 목사였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976년부터 서울 산동네에 유치원을 열고 빈곤 아동을 돌보는 일을 시작한 빈민촌 선교 1세대 목사다. 그가 한나라당을 선택했을 때 진보 진영은 ‘빈곤 아동의 대모’에서 ‘부자들의 식모’가 됐다고 비아냥댔다. 부자 정당의 장식품이란 것이다.

그러나 강 목사는 장식품이 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2011년 의원총회에선 당시 박근혜 의원을 향해 “나는 개발 독재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35년을 ‘죽을 똥’을 싸면서 판자촌에서 일했다”며 “당신(박근혜)은 청와대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느냐. 빈곤 아동들에게 빚을 갚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을 장악한 친박(親朴·친박근혜)계가 빈곤 아동에 대한 획기적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유력한 차기 권력 앞에 친박은 물론 친이(親李·친이명박)계도 눈치만 볼 때, 그는 “난 ‘빈곤당 아동계’다. 하나님 눈치만 본다”고 했다.

평생 빈민 운동을 했지만 퍼주는 복지는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당시 민주당이 ‘무상 급식’을 앞세우고 각종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강 목사는 “무상 급식은 ‘밥만 먹으면 아이가 자란다’는 천박한 교육관”이라며 “아이들에겐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 빈곤층에 대한 복지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똑같은 잣대를 본인이 몸담은 정당에도 들이댔다. 무상 급식에 밀린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놓고 민주당과 복지 경쟁을 벌이자 “한나라당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며 “돈 없어 급식 예산 지원받는 청소년이 137만명인데, 표 있는 대학생만 보이느냐”고 했다.

그런 가운데도 빈곤 퇴치 예산을 딸 때면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기자의 손을 잡고 “오늘 지역아동센터 예산 몇 십억 땄다” “오늘은 장애 아동 예산 땄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실세 의원들의 이름을 대며 “내가 돈 달라고 협박도 좀 했지. 히히”라며 아이처럼 웃었다. 수천억, 수조원의 예산이 ‘보편적 복지'란 이름으로 뿌려져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직접 지원되는 예산을 하나하나 챙기는 건 그의 몫이었다.

그는 의원직에 미련이 없었다. 그러나 의원을 끝내고도 국회 본관 지하 기도실에서 새벽마다 무릎 꿇고 나라를 위해 기도한 것은 강 목사였다. 그가 이끌었던 국회골방기도회는 2000일이 넘게 지속됐다.

그랬던 강 목사가 지난 26일 대한민국에 파송된 지 69년 만에 갑작스럽게 고향인 천국으로 돌아갔다. 국화 한 송이 놓기 위해 지난 주말 찾았던 안산 장례식장엔 코로나에도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권력이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의 눈치를 봤던 ‘진짜 정치인’ 강명순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