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장면.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뉴스1

‘결혼 지참금 마련하려… 금은방 절도’ ‘지참금 마련 못 한 신랑, 도둑맞았다 경찰에 허위 신고’.

태국 신문에는 이 같은 제목의 뉴스가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한다. 결혼을 앞둔 신랑이 신부 집안에 줄 지참금을 마련하려 절도나 강도 행각 등을 벌였다는 것이다. 태국은 남성이 결혼할 때 신부 집안에 이른바 ‘신솟(Sin sod·지참금의 태국어)’을 내야 한다. 딸이 아내 역할을 잘하도록 키워낸 대가를 신랑에게 요구하며 생겨난 전통이다. 신부 측은 이 돈으로 현금 다발과 각종 보석을 준비해 예식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쌓아놓는다. 가문의 위상과 신랑의 능력을 하객들에게 자랑하는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체면치레와 관련된 풍습만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되레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자 신솟은 인플레이션을 맞았다. 신부의 학력과 경제적 능력이 오르며 신랑이 내야 할 돈도 올라갔기 때문이다. 태국 인터넷에는 ‘명문대 출신 신부 신솟으로 100만바트(약 3800만원)를 내라고 한다’ 등 고민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신부 스펙을 입력하면 신솟을 자동 계산해 주는 앱까지 생겨났다.

이 체면치레용 옛 풍습은 오늘날 사랑에 빠진 젊은 태국 남녀를 비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신솟 준비 과정에서 파혼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신부를 포기 못 하는 남성은 결국 돈을 마련하려 범죄에 손을 댔다가 뉴스에 나온다. 운이 좋으면 양가가 합의해 신솟 임대 사업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업체에 대여비를 내고 현금 다발과 보석, 외제차 등을 결혼식 때만 잠깐 빌려 쓰는 것이다.

태국은 한국과 함께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빠르게 감소하는 국가다. 작년 합계출산율이 1.16명으로 개발도상국 중 가장 낮다. 유엔은 태국 출산율이 올해 이미 0명대에 진입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29년이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60년 뒤면 인구가 반 토막 날 위기라고 한다. 한국처럼 돈을 쏟아부으며 저출산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출산은커녕 혼인까지 감소 추세다.

출산율과 혼인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한국과 태국의 공통점 중 하나를 꼽자면 체면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이 너무 피곤하고 험난하다. 한국에서도 신랑의 프러포즈나 신부의 혼수가 조촐하다는 이유로, 예식장 선정이나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과정에서의 마찰로 파혼했다는 사례를 숱하게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소셜미디어 발달로 체면치레해야 할 대상이 늘며 두 나라의 결혼식 집착은 더 심해지는 추세다. 두 사람의 사랑과 기대로 채워져야 할 결혼 준비 과정이 남 눈치 보느라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쓸데없는 허례허식을 버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저출산 해법 중 하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