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에 반대하는 첫 번째 시위가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AFP 연합뉴스

아르헨티나에도 한국의 ‘임대차 3법’ 같은 개정 임대차법이 있다. 이름뿐 아니라 개정 취지, 시기, 내용까지 양국 입법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한국에서 2020년 7월 전·월세 계약을 한 차례 연장해 4년까지 입주 가능토록 한 것처럼 아르헨티나에서는 2020년 6월부터 월세 계약 보장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한 한국처럼 아르헨티나도 중앙은행이 정한 특정 지수를 따르도록 했다. 인상률 상한을 둔,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조항이다.

아르헨티나 집주인들은 물가상승률이 연 100%가 넘는데도 임대료를 올리는 데 제한이 생기자 장기 월세 매물을 거둬들였다. 단기 임대로 돌려 정식 월세 매물은 씨가 말랐고, 장기 계약을 해도 미리 가격을 더 올려받으려 하면서 그나마 나온 매물은 이전보다 폭등한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장기간 임대료를 제한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비해 집주인들이 신규 전·월세 계약 시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이에 보증금이나 전·월세 비용이 50% 이상 오른 곳이 속출했고, 심하게는 두 배가량 오른 경우도 있었다. 해당 정책을 주도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이 본인 소유 주택에 들인 세입자들에게 법 시행을 앞두고 전세 보증금을 대폭 인상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집주인은 향후 시장가보다 낮은 임대료를 받을까 걱정했고, 세입자는 단기간 폭등한 비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예측 가능성을 높여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선량한 명분을 내세운 법률이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 피해를 줬다.

아르헨티나가 한국과 다른 것은 최근 해당 법이 폐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비에르 밀레이 신임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인 20일(현지 시각), 국가 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한다는 내용의 긴급명령(대통령령)을 발표했다. 그가 꼽은 300여 개 규제 가운데 첫 번째로 언급된 것이 임대차법이었다. 그만큼 해당 법이 시장과 국민 생활에 악영향 미쳤다는 것이다. 신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도 중요했지만 의회에서 여야 모두 개정 임대차법의 실패를 인정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임대차법 개선 논의가 답보 상태다. 윤석열 정부 초기 개선을 시도했지만, 거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며 정책 추진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최근 박상우 국토부장관 후보자가 임대차 3법 개선 필요성을 시사하며 기대를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야당 동의 없이는 개선이 힘든 상황이다. 그동안 각종 포퓰리즘과 반(反)시장주의적 정책을 남발해 반면교사 삼아야 할 국가로 여겼던 아르헨티나보다도 못한 처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