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유기업들은 벌써부터 시베리아공작조(工作組·사업단)를 꾸리고 있던데?”

지난 3월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만찬장에서 건배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러 직후 중국의 한 기업인이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전에서 사실상 러시아 편을 들어준 대가로 대규모 에너지·자원을 얻을 궁리를 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다음 달 1일 중국은 165년 만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사용권을 되찾게 됐다. 외부에선 시진핑의 러시아 힘 실어주기에 대해 “유럽에 미움만 사는 실속 없는 외교”라 평했지만, 중국은 정확히 값을 매겨 대가를 받아내고 있다.

스스로를 ‘상업(商業)주의 대국’으로 칭하는 중국의 속성은 ‘왕서방’이다. 다른 나라를 정치적 목적으로 돕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이득을 별도로 받아낸다. 이 때문에 중국과 손잡은 나라들은 이중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많다.

시진핑의 역점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하는 중국 금융기관의 중진은 “돈 빌려줄 때 ‘못 받을 것’이란 걱정은 안 한다”면서 “현금으로 못 받으면 항구 사용권 등 이권으로 청구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중국의 우방인 북한조차 중국과 거래할 때 ‘추심’의 날이 올까봐 조심스러워 한다. 북·중 교역의 중심인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새 다리가 완공 후 10년째 북한 측 거부로 개통되지 않는 것만 봐도 북한의 경계심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중재자’를 자처한 것도 어쩌면 새로운 ‘국가 비즈니스 모델’일 수 있다. 소위 ‘대국(大國)’ 지위를 이용해 세계 한복판에서 국제 분쟁을 조율하며 중재비를 두둑하게 챙기려는 것이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중재 이후 사우디와 중국 간 ‘위안화 거래’가 급증했다. 중국의 최신 외교·안보 정책 패키지인 ‘발전·안보·문명 이니셔티브’는 외국이 들여다보는 ‘중재 서비스 메뉴판’이 됐다.

중국은 돈이 많은 나라인데 왜 돈에 집착하나. 중국은 경제라는 하부(下部) 구조가 의식과 행동이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믿는다. 돈이 없으면 국제 질서를 바꿀 수 없고, 경제적으로 미국에 뒤처진 상황에선 역전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중국이 경제적 이득을 언제나 우선으로 챙길 것이고,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다 할 것이란 예상을 하게 한다. 중국은 미국과 싸우면서도 미국 기업 애플과는 친하다. 중국이야말로 어쩌면 ‘정경분리’의 표본일지도 모른다.

‘청구서’를 잊지 않는 중국을 이웃으로 둔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셈에 밝아야 한다. 한국이 최근 미국, 일본과 더 친해지고 ‘중국 견제’를 외치는 G7(7국) 정상회의에 참가했으니 중국은 느닷없이 청구서를 내밀며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에 기대 빠르게 경제를 키운 만큼, 중국도 한국의 중간재와 기술을 흡수하며 급성장했다. 한국은 빚진 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