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멕시코시티 광장에서 열린 취임 4주년 축하행사에서 멕시코 대통령 오브로도르가 지지자들에 둘려쌓여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멕시코가 연일 정치 시위로 떠들썩하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제안한 선거제도 개정안을 지난달부터 의회가 논의 중인데, 여야 지지자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개정안의 핵심은 국회의원 정수를 3분의 1 감축하는 것이다. 인구 1억2000만의 멕시코에서 상원은 128석에서 96석으로, 하원은 500석에서 300석으로 줄어 총 396석이 된다. 멕시코는 한국처럼 정당 득표율로 의석을 나누는 비례대표제를 병행한다. 이 비례대표를 폐지해 정치 책임성을 높이고 의회 예산 낭비를 줄이자는 게 오브라도르의 생각이다. 야당은 “행정부 권력을 확대하고 여당에 유리한 안”이라며 반발하지만, 여론은 의원 감축 쪽에 기울어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좌파다. 지구 어디서나 좌파는 세금 더 걷고 예산 더 쓰자는 쪽이다. 국가·정치 권력을 키우려 하는 쪽도 대개 그렇다. 언론과 학계는 “어떤 좌파 정치인도 오브라도르처럼 철저한 긴축과 내핍 정신에 사로잡힌 인물은 없었다”(AP통신)고 놀라워한다.

오브라도르가 메스를 들이댄 건 사실 의회가 마지막이다. 그는 2018년 말 취임하자마자 본인 월급부터 60% 삭감했다. 2500억원짜리 호화 전용기를 내놓고 민항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출장 다닌다. 대통령실 예산을 6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정부 조직을 줄이고 공직자 연봉도 깎았다. 그는 지난 1일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20%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아낀 재원으로 서민 소득을 높여준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암로(AMLO)’란 애칭으로 불리는 오브라도르는 임기 3분의 2가 지났는데도 지지율이 70%에 이른다. 강력한 대통령 앞에 의회는 떨고 있다.

세계사를 보면 왕정이나 독재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국민의 대표인 의회의 규모와 권한이 확대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특권화된 의원 신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2020년 국민 투표에서 70% 찬성으로 의석수를 945석에서 345석 줄였다. 비대한 의회가 국가 혁신을 막고 포퓰리즘 경쟁만 부추긴다는 분노가 의원 철밥통을 빼앗은 것이다.

우리도 의원 감축 필요가 제기돼 왔지만 “선진국(OECD)에 비해 한국 의원 수 300명이 적어 오히려 늘려야 한다”며 의원들이 논의를 봉쇄했다. 그러면서 꾸준히 연봉을 셀프 인상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원 보수를 5배로 올려 세계 톱 수준으로 만들었다. 정부 공무원에 이어 민간인에게까지 확대한 반부패법(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도 자기들만 쏙 빼놓은 게 대한민국 국회다. 수사 선상에 오른 전 대통령 후보는 불체포특권을 노리고 국회로 숨고, 어떤 의원들은 원내에서 음모론과 막말을 내뱉고도 책임지지 않는다. 곧 국민도 인내의 한계를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