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릭 갈런드 미 법무장관이 지난 11일 워싱턴 법무부 청사에서 FBI의 트럼프 소유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압수수색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로이터 뉴스1

사상 초유의 전직 미국 대통령 자택 압수 수색이 2주 지난 워싱턴 기류가 묘하다. 민주당과 지지층들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얼마 전까지 트럼프를 기소하라며 수사 당국을 압박해 왔던 이들이 이젠 ‘수사 신중론’ ‘사면론’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와 거리를 뒀던 공화당,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트럼프 옹호에 나서면서 결집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인플레감축법 등 굵직한 법안 통과에 들뜬 바이든 백악관은 간만의 ‘정책 성과’가 묻힐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는 압수 수색 이후 진행되는 상황이 집권 여당이 상상했던 그림과 다르기 때문이다. 트럼프 지지층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 75%는 이번 압수 수색이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압수 수색 직후 지지자들에게 모금 이메일을 돌린 트럼프는 불과 이틀 만에 100만달러를 쓸어 담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조사에서 공화당뿐만 아니라 전체 응답자의 48%도 이번 수사에 대해 ‘정치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전직 대통령 강제 수사에 대해 대중들이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여론조사들에서도 압수 수색 이후 트럼프 지지율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작년 트럼프 지지자들의 1·6 의회 난입 사태 직후 트럼프 지지율이 공화당과 무당파 등에서 골고루 4~5%p씩 하락한 것과 비교된다.

워싱턴 정가에선 크게 3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트럼프를 기소하는 방안, 바이든 대통령이 ‘차기 대선 불출마’를 조건으로 그를 사면하는 방안, 그리고 중간 선거 이후까지 사법 처리를 미루는 방안이다. 이 중 특히 사면론이 최근 여권에서 대두되는 건 미국 내 여론 지형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유례가 없는 ‘전직 대통령 기소’는 역풍만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친여 성향 언론들이 최근 칼럼에서 “사면이 정치적 위험성이 덜할 것”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 입증에 실패한 뮬러 특검 사례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민주당 관계자는 최근 기자에게 “당이나 행정부가 이번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번 수사를 총지휘하는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이 외풍(外風)에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트럼프 수사가 더디다는 여당 내부의 잇따른 공격에도 측근들에게 “절차대로 하라”며 묵묵부답이었다. 1·6 사태 1주년 연설에선 “범죄 수사에서 아군과 적을 위한 규칙은 따로 없다”며 여당 비판을 공개 반박했다. 수사 기관이 대통령과 여당의 ‘주문’대로 수사를 개시하고 멈췄던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백악관은 물론 민주당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