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워싱턴특파원

지난 13일 미·북 긴장이 고조된 2017년 미국이 북한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두고 핵무기 80기 사용을 검토했다는 기사를 썼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 중 “전략사령부는 (중략) 80기의 핵무기 사용을 포함할 수도 있는, 공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주의 깊게 검토하고 연구했다”는 문장을 인용한 보도였다.

그런데 14일 한겨레신문이 외교부 당국자를 인용해 이 기사는 “오역에서 비롯된 오보”라고 주장했다. “문맥상 북한이 핵무기 80기를 사용해 공격할 가능성”을 말한 것인데 거꾸로 보도했다는 것이었다. 15일 청와대 관계자도 “오역”이라고 했다가 슬쩍 ‘전문을 확인하라’고 말을 바꿨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신간 격노(Rage) 표지.

책 전문을 읽은 터라 “문맥상 오역”이란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 문장만 놓고 보면 핵 사용 주체가 북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뒤 맥락은 모두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 국방장관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두고 고뇌하는 내용이다. ‘문맥상’ 핵무기 사용 주체는 미국이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16일 ‘격노’ 내용 중 핵무기 관련 부분을 전하면서 본지와 같은 내용으로 보도했다. 미 국무부 전직 관료도 본지 번역이 맞는다고 했다. 국내에서만 괜한 오역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원문을 쓴 우드워드의 말을 들어봐야 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인 그와 인터뷰를 잡기는 힘들었다. 그가 있는 곳을 찾아갔지만, 질문지만 건네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질문지를 건네자마자 읽어보던 우드워드는 이후 연락이 없다. 주변을 통해 재촉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16일(현지 시각), 우드워드 측근이 “그는 답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알려줬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드워드는 ‘책을 읽어보면 미국의 핵사용이란 점이 명확한데 왜 따로 설명해야 하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 상황을 설명했지만 ‘무슨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든 관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도 했다. 책을 보면 명확한데 정치적으로 벌어진 논쟁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한겨레신문이 인용한 외교부 당국자가 영어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핵무장한 북한’이 야기하는 심각한 안보 문제를 외면하려는 정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핵 사용 검토는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미국은 한국을 희생시키더라도 자국을 방어할 수밖에 없고, 핵이 없는 한국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것을 직시한다면 남북 협력만을 서두르거나, 핵무장은 못할망정 있는 원전마저 뜯어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기이하게 느껴지는 건 미국의 핵 사용만 문제고 북한 핵은 별일 아니라는 듯한 일부 언론의 태도다. 정말 ‘북한이 핵무기 80기를 사용해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면, 번역 오류가 문제인가? 국민에게 “큰일 났다”고 급히 알릴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