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레이션(K-Ration)을 아십니까? K팝, K푸드, K컬처 등 우리나라의 각종 콘텐츠들이 세계 무대에서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K-레이션이 인기였다. 필자는 백마부대 제29연대 10중대 관측장교로 1968년 2월부터 10개월 동안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미국이 공급하는 전투 식량을 C-레이션이라고 했는데, 한국의 김치, 고추장 등 전통 음식으로 만들어진 전투 식량에는 알파벳 C 대신 K를 넣어 K-레이션으로 불렀다.

베트남 전쟁 파병 초기에는 미국의 전투 식량인 C레이션, 정확히는 MCI(Meal, Combat, Individual)가 우리나라 병사들에게 공급되었는데, 스테이크, 비스킷, 초콜릿이 우리 입맛에 맞을 수가 없었다. 장병 복지에 많은 신경을 썼던 주월 한국군 채명신 사령관은 우리나라 음식을 장병들에게 먹이고자 했다. 처음엔 김치를 포함하는 것으로 개량된 한국형 C-레이션이 보급되었는데, 일본인이 생산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1967년 3월 우리나라가 자체 기술로 개발한 전투 식량이 탄생했는데, 바로 K-레이션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가공 기술은 K-레이션에 포함된 김치 통조림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김치는 쉴 대로 쉬는 데다 김치찌개처럼 물러터지기 일쑤였다. 쉰 김치와 통조림 캔이 반응하여 녹이 슬기도 했다. 적지 않은 문제였지만 ‘여러분이 이걸 안 먹으면 2주 뒤 일본 김치가 도착할 것이고, 김치 값은 일본 사람 손에 간다’는 채명신 장군의 말에 장병들은 불평 없이 쉰 김치를 먹었다. “우리가 이걸 먹어줘야 한국 가공 기술이 발전한다”, “쉬었다고 안 먹으면 한국 경제 발전이 더뎌진다”는 생각으로 그 맛없는 김치를 먹은 것이다.

미국이 K-레이션을 한국으로부터 구매하여 우리 장병들에게 보급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이는 일종의 수출이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K-레이션으로 벌어들인 금액이 약 5600만달러였는데, 1968년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약 4억 6000만달러였음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통조림 제작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어 가공식품을 해외에 수출하게 되었다.

군인은 쉰 김치를 먹을 때도 나라가 우선이었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수출액이 늘어났고 가공 기술이 발전했다. 군인에게 나라가 우선인 것처럼 의사에게는 환자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국가유공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훈병원도 의료 대란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국가유공자들은 고령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찾는다. 보훈병원의 전공의들도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한 위탁 병원 목록을 안내받으니, 아플 때 진료를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국가의 부름으로 참전한 베트남 전쟁에서 필자는 매 순간 살고 싶었다. 작전에 투입될 때 ‘높으신 분들이 우리 사정을 1000분의 일이라도 이해했으면’ 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작전 중 총격 소리가 들리더니 무전기 안테나가 총에 맞아 날아갔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곳이 바로 군인이 있어야 할 곳이었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지키는 군인처럼 묵묵히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 보훈병원 의료진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부디 불안에 떨고 있는 환자 곁을 지켜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