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1동주민센터에서 유권자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민심이 폭발했다. 지난 주말 전국 투표소 곳곳엔 긴 줄이 늘어섰다. 역대 총선 최고치 사전 투표율을 기록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오만한 권력자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을 민심의 회초리로 응징하고 경고하는 시간이 마침내 왔다. 미래의 희망을 선택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불통 리더십은 국민의 울화를 부추겼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갈구한 민심을 거슬렀고 배제의 정치로 질주했다. 인사 정책은 협소했고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역사 전쟁을 남발했다. 윤 대통령의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치는 국정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패러다임 혁신과 내정의 전환이라는 공(功)도 묻혀 버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비명횡사’ 리더십은 민심의 역린을 건드렸다. 이 대표는 당내 민주주의를 파괴해 민주당을 ‘이재명 유일 정당’으로 퇴행시켰고 사법 정의와 국민의 도덕 감정을 희롱했다. 자신의 방탄과 차기 대선을 위해 비토크라시(Vetocracy·적대적 거부 정치)로 일관했다. 이 대표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당권 전횡과 중대 범죄 혐의는 민주당에 깊은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실(失)인심한 빈틈을 조국혁신당이 공략했다. 윤석열과 이재명에게 분노한 민심을 ‘정치인 조국’이 포획했다. 윤 대통령의 실정(失政)이 조국을 부활시키고 이 대표의 전횡이 조국을 최대 경쟁자로 키웠다. 하지만 윤석열과 이재명의 동반 실패의 산물인 ‘조국 현상’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조국 대표가 외친 복수 정치의 서사(敍事)엔 정당성도 없고 국가 대계도 없다. 가장 치명적인 건 조국의 르상티망(Ressentiment·원한)이 진정한 정치를 파괴한다는 사실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한풀이 정치는 통치 불가능성의 파국을 부른다.

윤석열식 권위주의 통치는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트리고 이재명·조국식 응징 정치가 부른 분노의 화염은 나라 전체를 태워버릴 수 있다. 윤 대통령의 뺄셈 정치가 한동훈 위원장이라는 정치적 대체재로 보완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반면, 이재명·조국 대표가 정치 팬덤 위에 세운 ‘유일 체제’는 수정 가능성에 닫혀 있다. 이번 총선이 한국적인 이중 권력 상태를 해소하기는커녕 진영 간 적대감을 무한 증폭시키는 배경이다.

거야(巨野)가 200석 가까이 얻는 대승을 거둔다면 대중의 분노를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개헌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본격화할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탄핵을 공언해 온 야권의 시도엔 가속도가 붙는다. 정치는 적과 동지가 생사를 다투는 전쟁으로 비화한다. 보수와 중도 시민들의 ‘박근혜 탄핵 학습 효과’로 우파 시민사회의 거대한 반발도 불가피하다. 나라 전체가 유사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안보와 경제도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약육강식의 신냉전으로 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에 이어 대만·한반도까지 전화(戰禍)가 밀어닥친다. 나라가 공중 분해될 위기를 맞는다.

이것은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다. 현실 정치는 이런 최악의 공포와 최선의 이상 사이 어떤 지점에서 위태롭게 유동한다. 지상천국을 약속한 정치가 지상의 지옥으로 귀결되는 사례도 많다. 현실 정치에선 추상적 선을 이루려 하기보다 구체적 악을 줄여야 한다. 때로 정치는 최악을 피하려고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곤경으로 인간을 몰고 간다. 비극적 결단의 순간이다. 이번 총선 정국에서 우리는 그런 실존적 갈림길에 서 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정치인의 득세는 정치를 회복 불능으로 망가트린다. 범죄자와 사기꾼이 대권을 노리는 사회는 착란의 공간이다. 정치 지도자가 옳고 그름의 잣대를 폐허로 만들어 버린 곳에선 정상적 삶이 불가능하다. 주권을 행사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엄숙히 묻고 답해야 한다. 좋은 정치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든다. 한 표 한 표의 무게가 하늘처럼 준엄하다. 오늘 투표하는 바로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수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