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가 우리나라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교육 당국과 대학은 학생들의 학력을 정확히 평가하고자 제도를 계속 바꿔 왔다. 학교의 가장 큰일은 교육이 아닌 입시가 되었고, 여기에 모든 것을 걸다 보니 공교육에서 학생들의 소질·적성·다양성은 종종 무시되곤 한다. 어릴 적부터 학생들은 조기교육, 선행학습 또는 영재교육에 훈육되거나 입시에 유리한 과목만 선택해 공부하면서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시달린다. 부모들은 사교육에 엄청난 비용을 지출해야 하니 그럴 여력이 없는 부모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교육 망국’ 상황이다.

‘천로역정’ 같은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단 한 번의 수능 시험으로 평가를 받는다. 내신성적, 자기소개서, 봉사활동 및 면접점수도 평가에 반영된다. 그날의 운이나 컨디션이 결과를 좌우하고, 부모나 선생님들이 평가자료 작성을 도와줄 수도 있으며, 학력이 아닌 발표력에 당락이 좌우된다. 그렇다고 대학 신입생들을 세계 최고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세상의 정보를 선택해서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필요할 때 쓰는 것이 지식인데, 학생들은 입시에 필요한 정보만 듬성듬성 머릿속에 담으니 깨진 파일처럼 활용이 불가능하다. 지식이 무용화된 학생들은 질문이 조금만 틀에서 벗어나도 당황하고, 자기주도형 학습에 버거워하며, 적성이 아닌 시류와 인기만으로 진로를 결정하곤 한다. 세계 최고들과 경쟁해야 할 학생들이 어릴 적 배운 지식도 소화를 못하니, 교수들과의 갈등은 물론 심각한 연구 진실성 문제도 발생하곤 한다.

과연 현재의 입시 제도는 변별력이 있고 공정한가?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 체계는 인재 양성에 적합한가?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결과를 좌우한다”라는 자조적인 풍자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입시와 교육 체계의 근간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됐다. 학생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개개인의 자질과 적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기본 소양과 적성을 중시해야 한다.

입시 제도의 성역인 3불 정책(고교서열화, 본고사, 기여입학제 불허)의 쇄신을 제안한다. 학생들이 수능을 두세 번 본 후 평균 또는 최고 성적으로 평가받게 하자. 분야에 따라 수시와 정시의 반영 비율을 자율로 정하고 정성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면 본고사 형태의 수시도 허용하자. 외국인과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사회 보호층 자녀의 입학을 확대하고, 등록금 인상이 어렵다면 공론화를 통해 소양과 학력을 갖춘 부유층 자녀의 기여입학을 공정성의 침해 없이 허용하는 것을 고민해 보자. 대학이 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미달에 대응하고, 재정 자립에 도움을 주며 다양성과 공익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입시 개혁의 핵심은 학생을 성적 평가의 대상이 아닌, 타고난 소질을 가진 개인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중·고교를 입학 성적이나 대안학교 또는 인문·실업계 학교로 구분하지 말고 세상의 다양함을 맛보고 적성 탐색이 가능한 학교로 특화시키고, 대학은 기초 및 교양교육을 강화하여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기반으로 평생 설계를 도와주면서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이래야 우리가 염원하는 노벨상 수상자나 ‘하비프러너(hobbypreneur)’로 대표되는 열정적 기업가, 또는 워라밸을 즐기며 삶의 질을 중시하는 미래형 사회인을 배출할 수 있다. 입시 때 학생들에게 세세한 전공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말고, 광역화된 모집단위로 입학해서 기초 및 교양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 후 전공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교육과 입시 혁신은 미래를 대비하고 기존 관념을 혁파하겠다는 용기만 있다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교육개혁의 기치를 내건 이번 정부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교육 입국’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