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국가의 전폭적 지지와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우수한 교수와 학생을 받아들이고 뛰어난 업적을 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서울대의 막중한 소명은 한마디로 ‘우리나라 대학의 모범이 되어 학문과 사회 발전을 주도하라’는 것이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전기병 기자

그런데 사회 규범과 대학 운영 규칙은 근본적 차이가 있다. 교육기관의 핵심인 교수와 학생의 최고 덕목은 우수함과 창의력이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반면 사회는 자율성보다는 규범과 원칙, 그리고 예측 가능성과 질서를 중시한다. 학생이 새벽까지 실험하다 깜박 잠이 들어 첫 교시 수업에 지각했을 때 사회 규범만 생각한다면 예외 없이 학생을 지각 처리해야 하나, 교육적 측면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오히려 위로하고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서울대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대학과 사회가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이해하고 관심 사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최근 서울대 감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서울대는 수천억에 이르는 국가 예산을 사용하므로 교육부는 서울대가 국민 세금을 올바르게 쓰는지 확인하고 국민에게 보고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활동에 대해 교수들이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반발하는 중이다. 사상 유례없이 총장 징계를 요구하고, 불합리한 제도 개선보다 경미한 실수를 한 교수들을 제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교육부 방침에 대한 교수들의 반발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일부 교수의 부도덕함을 상기하며, 서울대 교수들을 특권만을 요구하는 비이성적 집단으로 비판하기 쉽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제5조 ‘교육부 장관은 대학을 지도·감독한다’는 조항과 재정 지원을 무기로 대학의 ‘생살여탈권’을 가졌다. 이 막강한 권력에 저항할 수 없는 대학은 불이익을 피하고자 편의성만 중시한 학칙과 규정으로 교수들의 활동을 완전히 묶어놓았다. 연구비로 구입한 노트북을 책임자 승인 없이 출장에 가져가거나, 제대하는 학생에게 수업과 생활 편의를 제공하면 예외 없이 제재받는다. 최근 변경한 제도를 다 잊혀진 옛날 사안들에 소급 적용하고, 행정 오류로 제때 제출한 보고서가 처리되지 않아도 교수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교육기관이 불합리한 제도를 운영하면서 사람이 아닌 규정에만 몰입하는 행태는 헌법 제31조가 보장한 대학의 자율성을 명백하게 침해한다. 대학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고등교육법 제5조를 폐지하거나 ‘지도 감독’을 ‘지원 평가’로 수정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노력은 소모적 논쟁을 초래하는 교육부 폐지보다 훨씬 실효성이 있고, 대학과 사회의 다름과 자치성을 인정하는 첫 단추다.

그다음에는 교수와 대학을 옥죄고 있는 제도와 규정의 불합리성을 철폐해야 한다. 서울대는 개인을 소중히 하는 사회의 변화를 읽고 교육기관의 정도를 지켜 창의력과 우수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서울대가 빛바랜 영화와 행정 권력에 탐닉해 불합리한 제도를 방치하면 핵심 발전 동력인 교수들의 열의가 급격히 소실되고 국민과 사회도 쇠퇴하는 서울대에서 관심을 거둘 것이다. 평교수들 또한 청렴함과 교육자의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부나 대학 본부에 앞서 엄격하게 자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들은 교육부의 기능이나 원칙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가 만든 관료주의와 행정 편의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지금 서울대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정직함과 용기, 그리고 사회를 감동시키는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