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이 전임 정부와 다를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초 낸시 펠로시 미 연방하원 의장이 대만을 거쳐 한국에 도착했을 때 어떤 외교 사절도 공항에 마중 나가지 않았는데, 이는 펠로시 의장이 모욕당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일으켰다. 며칠 뒤 박진 외교장관이 중국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났는데, 이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중국을 달래려는 행보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었다.

미국의 동맹국 중 한국은 최근까지 인도·태평양 지역 문제에서 비교적 침묵을 지켜왔다.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겠다는 뜻을 반복해서 말했지만 한국의 역할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인식은 실재한다. 일본 외무성은 2021년 외교청서 인도 태평양 지역 협력을 다룬 부분에서 역외 국가인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를 포함시키면서도 정작 한국은 포함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아세안연구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한국의 낮은 존재감이 드러났다. 어떤 나라가 강력하고 확실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고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의 순위는 전체 10국 중 9위로 호주나 뉴질랜드보다 낮았다.

이런 인식은 부당한 게 아니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 시절이었던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개한 뒤에도 한국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이란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뎠다. 다른 미국의 동맹들이 이를 채택하거나, 자국 상황에 맞춰 인도·태평양 전략을 짜는 것과 대조를 이뤘다.

펠로시 의장 방문 관련 윤석열 정부의 실책, 박진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회담, 그리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칩4′ 반도체 공급 동맹 가입에 대해 한국 정부가 내켜하지 않았던 모습은 한국이 인도·태평양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지 의심을 키워왔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 같은 핵심 외교 정책 수행 능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의 저해 요소와 중국의 압박에도 한국은 여전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전략적 역할을 확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한국은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짜고 있으며 연말에 발표할 예정이다. 둘째, 한국과 일본은 양자 관계 개선과 한·미·일 삼국 협력 강화를 위한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두 나라 외교장관은 최근 석 달간 세 차례 만났다. 가장 최근인 7월 18일 회동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박진 외교장관이 북한의 핵 위협 대응과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이 가진 간략한 회담 등 3국 회동도 여러 차례 열렸다.

셋째,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가입하기로 했으며,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칩4′에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칩4′가 중국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맹이라기보다 공급망 협의체라고 부르며 다소 격을 낮추고 있지만, 독자적 경제 안보를 추구하면서 ‘칩4′ 예비 회동에 참석할 것을 암시했다.

넷째,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제한하기로 합의했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을 신속하고 날카롭게 반박한 것은 국익을 위해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쪽으로 전략적 방향을 설정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보수·진보 어느 쪽이 집권하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계속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기에 미국과 마음 맞는 동반자 국가들과 함께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과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