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계속된 전쟁, 밀을 비롯한 주요 곡물의 작황 부진, 공급망 혼란, 곡물 수출국의 식량 안보 정책 추진으로 글로벌 식량 위기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5월 국제 밀 선물 가격이 전년 대비 61% 오르는 등 5월 국제 곡물 선물 가격은 평균 23% 올랐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4월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11.5%로 매달 오르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따라 5월 국내 식용 및 사료용 곡물 수입 단가도 크게 상승하여 밀의 경우 전년 대비 47%까지 올라 식품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매년 1600만t 이상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7위 식량 수입 국가로 작년에 곡물 수입에 89억달러(약 11조원)를 지출했고, 올해는 곡물 가격 급등으로 100억달러 이상의 지출이 예상된다. 곡물 가격 상승은 국가 재정 부담과 식품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재난 발생과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공급 불안정으로 글로벌 식량 위기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우리가 필요한 곡물을 아무리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 해도 수입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즉 어떻게 싸게 수입할 수 있는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급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일본농협(젠노)과 종합상사들이 미국·남미·호주 등에 진출해 현지에서 곡물 조달에 필요한 곡물 터미널과 저장 사일로(silo·창고) 등 조달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사업 역량을 키워 식량 자주율을 높이는데 기여해 왔다.

최근 국내 몇몇 기업들이 해외에서 곡물 수출 터미널 지분을 인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식량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식량 안보 측면에서 이러한 민간의 해외 곡물 사업 투자 경험과 역량을 잘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다. 식량 조달 사업은 많은 투자 비용이 소요되면서도 수익성이 높지 않아 기업의 해외 곡물조달 사업을 독려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정책 금융 지원과 민간 사업을 통해 확보된 곡물을 안정적으로 국내에 반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기업은 사업 안정화에 도움을 받고, 정부는 해외 곡물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글로벌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외 곡물의 민관 조달 협력 시스템 구축과 함께 상시적인 곡물 비축 제도의 운영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연간 곡물 수요량 약 2000만t 중에 주식인 쌀 400만t 외에 제분용 밀, 식품 제조용 옥수수 및 콩 등 식용 곡물의 수요는 500만t이 넘는다. 주식인 쌀은 국내 자급과 공공 비축제의 운영으로 문제가 없지만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밀과 옥수수는 식량 위기에 대응한 비축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최근 정부는 국내산 밀과 콩의 비축 계획을 발표했으나 국내 생산량이 절대 부족해 장기적으로 수입산 곡물 비축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향후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확보한 곡물을 비축 사업과 연계시켜 국내로 반입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곡물 비축 사업의 안정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 곡물 파동이 발생했던 2008년과 2012년에도 곡물 수급 안정을 위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은 미흡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새 정부 출범에 맞추어 민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실질적인 식량 안보 시스템이 작동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