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년 전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오늘날까지도 자랑스럽게 주민등록증을 지갑 안에 가지고 다닌다.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는다는 것은 얼굴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특별하고도 큰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에 파송된 선교사의 4대 후손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일평생을 살아왔던 나는 2012년 3월 21일 드디어 특별귀화 1호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이때는 사회적으로 이중국적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고, 특별귀화 제도라는 것이 본인의 원래 국적을 상실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적을 추가로 취득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였기 때문에 이 제도를 추진하고 있던 법무부의 국적 업무 담당 부서에서는 일반 국민에게 나쁜 인식을 줄까 봐 고민했던 것 같다.

1970년대 서양 출신으로서 최초로 대한민국에 귀화하신 분은 천리포 수목원을 설립하셨던 민병갈 선생님이었다. 이분은 우리 아버지의 친구셨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아직도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느냐며 야단치셨다. 너는 미국에 가서 살 것이냐, 미국 땅에 가서 죽을 거냐고 나를 심하게 질책하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 역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한 번도 대한민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가거나 미국에서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대한민국으로의 귀화는 나 역시 바라던 것이었다. 그러나 진주만 폭격을 경험하셨던 우리 부모님은 미국에 대한 강한 애국심이 있으셨고, 특히 우리 어머님은 내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하겠다는 얘기를 꺼낼 때마다 아주 강하게 반대하셨기 때문에 나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문제를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시간을 보내던 차에 국적법이 개정되어 그들의 선조들 중 독립(국가)유공자가 있는 경우 또는 특별한 공로가 있는 경우에는 원래 국적을 상실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특별귀화’ 제도가 포함된 새로운 법안이 통과됐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특별귀화 제도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된 사람’이 되었다. 그날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가 “태극기 좀 흔들어 주세요”라고 요청했다. 나는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어 어색함을 깨고 모든 사람과 함께 웃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때를 가장 흐뭇하고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러시아·중국 등 많은 외국 국적의 독립유공자 후손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을 우리가 따뜻하게 안는 것은 이제는 선진국으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이 가진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개발도상국들이 대한민국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가 발전해 온 길을 돌아보고 우리가 어려웠을 때 우리를 도와준 사람은 누구이고 그 도움을 준 사람에게 도울 일이 없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가장 어려웠을 때를 희생하고 우리를 도와준 이들 또는 그 후손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 대한민국은 마땅히 그에 부응해야 하고 보답해야 한다.

우리 법무부 국적과에서 매년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발굴하여 국적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유공자 후손들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하는 것은 그 선조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노고를 치하하고 보답하는 의미 있는 활동이다. 먼 타국에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충성을 다했던 유공자들의 후손에게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행사를 지속함으로써 우리 국민 모두가 그들의 희생을 계속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